9강 도피성
창4:1-7
지난주일 우리는 가인의 삶에 대하여 살펴 보았음
가인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자의 삶이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야 함.
그러니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 것이 삶의 원리가 됨
성경은 이러한 삶 자체를
살인자의 삶
가인의 삶
가인의 길에 행하는 삶이라고 부름
성경에서 살인의 정의
1)물리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것
2)형제를 노하는 자, 라가라 한자, 미련한 놈이라 한자, 형제를 미워하는 자
우리 모두는 다 살인자
살인자의 결과: 반드시 죽여라
민35: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가인은 고의적인 죄 된 삶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말하고” 개혁한글 성경에서는 “고하니라” “요메르”이라는 단어는 “말하다”라는 의미의 아마르 라는 동사의 미래 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가인의 재물을 열납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신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아우 아벨에게 어떤 말을 했다는 겁니다.
한글 개혁성경에는 가인이 아벨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음
그러나 70인역, 라틴어 번역본 라틴 벌 게이트 성경 공동번역, 사마리어 오경에 보면
“요메르”라는 단어의 목적어로 “들로 가자”라고 기록이 되어있음
정확하게 번역하면 가인이 아벨에게 “들로 가자”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성경주석가 메튜 헨리에 의하면 성경의 갈대아 번역본에서는 가인이 아벨에게 한 말의 내용이 조금 더 첨가 되어 있다고 함
갈대아 번역본에 따르면 가인이 아벨에게 자신의 불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함
나는 내세가 없다고 믿어, 상벌 같은 것은 없다고 믿어 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아벨이 거기에 동의를 하지 않자 시기하고 질투하여 들로 가자라고 꾀어내어 죽였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라고 합니다.
죽는 것이 성도의 삶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삶이 일어남
마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고의적 살인이었다는 것을 말함
고의적 살인의 무서움
창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9: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보다 “라아” 정탐하다, 노려보다, 즐기다 – 의도적
창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런데 우발적 살인자에 한해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음.
그것이 바로 도피성이라는 것임
이스라엘 – 살인자들이 도피할 수 있는 도피성이라는 제도가 있었음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고의적이든 우발적이든 뚝 같이 살인자임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살인자 중에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구분하시기로 함.
도피성
이스라엘에는 야곱의 12아들 이름을 따서 12지파로 구분되어 있음
그런데 야곱의 12아들 중 레위라는 아들이 있는데 레위는 12지파에 속하지 않았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는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지파로 구별해서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하도록 하셨음.
이스라엘은 레위인들에게 48개의 성읍을 주었는데 그중에 6개의 성읍이 도피성이었음.
이 6개의 성읍은 이스라엘의 어느 성읍에서나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성읍이어야 함
도피성은 고의적 살인을 한자가 아닌 우발적 살인자들이 도망해서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민35:6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이 도피성은 레위인들이 거하는 성이어야 합니다.
.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살인자를 죽이면 안됨
그러나 그들이 도피성 밖으로 나오면 죽임을 당함
왜? 이스라엘 율법은 사람을 죽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피하여 숨은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들의 죄는 완전히 사해져서 밖으로 나와도 무죄한 자로 여겨짐
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됨, 만약 죽이면 죽인자가 또 죽게됨
하나님 앞에서는 똑 같은 살인임
왜 이렇게 고의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나누는가
아담이후 모두는 다 살인자(미움, 시기, 질투, 비판, 판단, 후욕)로 살인자 -> 우리 모두는 사형
그 많은 살인 자중 얼마를 우발적 살인자로 간주해 주시기로 함
그리고 우발적 살인자를 도피성으로 피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도피성은 말씀드린대로 레위인들의 성이요, 레위인들이 사는 성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이스라엘 하나님께 바처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고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영적 이스라엘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발적 살인자들이 도피성을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레위인화 시켜버리겠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당신의 배성들이 이 땅의 원죄로 살인자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지만 그택하신 살인자들을 우발적 살인자들로 취급하여 레위인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으넣으셔서 그 죄를 사해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발적 살인자들이 온전히 사면되기 위해서는 그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어야 됩니다.
민35: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살인자들이 거하는 대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겁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도피성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발적 살인자 – 성도 우리를 우발적 살인자로 여겨주심
그래서 그들을 용서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자의 삶
그러면 하나님이 가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기에 동생을 고의적으로 쳐 죽였는가?
창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그런데 70인역(LXX)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도 번역한 것, 예수님이 이 성경을 인용하심
L-50, X–10, X–10 이 70인역에서는 “선을 행하다” 야타브라는 동사가 예물을 올바로 바치다, 재물을 올바로 바치다, 올바른 제사를 올리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즉 선과 제사를 같은 것으로 봄
70인 역에서는 창4:7을 네가 재물을 올바로 바쳤다면, 올바른 제사를 드렸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올바로 재물을 바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없드리느니라
가인이 하나님께 하나님 왜 내 제사는 기뻐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 물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제물을 올바로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야, 제사를 올바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하심
이렇게 해석하면 마치 하나님이 재물의 내용에 따라 받고 받지 않고 하는 것 같음
히브리 성경에서 재물을 드리다. 제사를 올리다, 선을 행하다, 옳은 일을 하다 라는 단어가 한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셔야함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 방식 – 선을 행하는 일과, 아름답고 유익한 일은 올바로 재물을 바치는 일, 즉 올바른 예배의 삶을 사는 것과 정확히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음
4:7 네가 선을 행하면 – 이 말은 네가 선을 행하고 아름답고 유익한 일을 행하면 이라는 뜻과 동시에 네가 올바른 재물을 드리면, 즉 올바른 예배를 하면 말을 동시에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어구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재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배의 이야기 인 것입니다.
올바른 예배와 선을 행하는 것이 같은 것인가?
인간의 “선” “토브”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함
하나님의 질서 아래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과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는 것이 선임
이것을 어기는 것이 - 악
가나안에 들어가면 다 죽여라 – 다 죽이는 것이 선
인간편에서의 선의 개념 –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이 그분이 세우신 질서 아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대우해 드리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 – 이것이 선이다.
자기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는 자리에 올려 놓고 그것을 대우해 드리는 것 – 워십(예배)
선과 예배는 정확히 같음
선을 행하는 삶과 예배하는 삶은 정확히 같은 것임
여기서 네가 선을 행하면 내가 왜 받지 않겠느냐라고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인 삶‘ 열심 있는 삶을 선이라고 하지 않음
선을 행하는 것과 올바로 제사를 드리는 것 올바로 예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라는 의미에서 정확히 같은 의미임
그런데 가인은 그러한 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가인은 여전히 자신을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 같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것들로 하나님의 비위나 맞추고 있었던 사람임
근본 된 땅을 갈게 함 – 티끌에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킴
네가 나온 흙을 갈게 함
진정한 예배는 인간의 하나님의 크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인정하여 하나님 앞에 작은 자로 엎드려 항복하고 순종하는 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예배였음
아벨 –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림으로 구원자의 도래를 기다리는 믿음을 보여줌
가인은 여전히 자신을 신뢰함 다른 구원자가 필요 없었음
그래서 자신을 믿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하나님께 드림
하나님은 자기가 준비한 것을 감지득지 하여 받아 드셔야 한다는 확신과 함께 그렇게 한 것임
안 받으니 화를 냄 – 불신자들의 삶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랑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 – 가인의 삶
내가 한 일이 하나님께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함
이 땅의 모든 인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자신을 예배하는 자 – 아벨 (옛사람과 전쟁에서 -> 점점 성숙되어져 감 -> 양육, 지어저감(엡) )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 가인
광양 60만 명이 죽고 옛사람-> 새사람 60만 명이 민수기에서 가나안에 들어감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는 죽은 것입니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임
내 것을 비우는 삶을 살게 됨
주님이 오늘 나를 부르셔도 그분 앞에 기쁘게 갈 수 있는 삶
이 삶이 예배자의 삶 – 아벨의 삶
여전히 자신을 예배하는 자의 삶 – 가인의 삶
이 삶을 우리가 살아 내어야 한다.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그리고 날들의 끝으로부터 – 종말에 란 뜻
왜 최초의 예배에 대해서 기술한 창세기에 요한계시록의 언의인 종말이란 어구가 나올까요?
왜냐하면 예배란 종말을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인류는 딱 두 부류
자신을 예배하는 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타락한 아담의 후예들은 모두다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임
그런데 중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생김
이 말은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이 어떤 무리와 완전히 구별되어 나머지는 유기되었다는 표시임 – 이것이 심판이고 종말에 일어날 일이다
그래서 예배를 이야기하는 처음에 종말이라는 말이 나옴
그러면 우리가 모여 공적인 예배를 드리던가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이제 선택과 심판으로 갈라져서 영원히 분리가 될 종말이 왔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그때부터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때 까지를 우리가 말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심판을 선포하는 겁니다.
자기들만을 위해 사는 이 세상에 어떠한 한 무리가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것은 그 세상과 자기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에 일어날 일인 것입니다.
예배는 종말을 품고 있음
여러분이 각자가 속한 처소에서 예배자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의 악이 여러분의 선한 삶과 대조가 되어서 폭로가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
아벨의 행위는 선하고 자기는 악하기 때문
그러면 보고 배워야 하는데 이 세상은 악당들은 죽여 버리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예배의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악하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악에게 당하는 모습으로 이 땅을 살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인에게 계속 맞아 죽음으로 해서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할 근거를 얻으시는 겁니다.
가인의 예배, 가인의 삶 / 창4:1-8 (0) | 2016.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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