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유업과 본질(3)
* 본문말씀 : 로마서 8:14~17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이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유업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신앙의 본질과 유업을 살펴보냐면 이 부분이 먼저 인식되지 않고 하나님의 유업을 살펴보면 그 유업이 우리의 삶속에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론적으로만 이 사실을 안채, 그것이 아무런 감흥과 감격도 없을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속에서 실제적인 아무런 역사가 없음에도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그러한 자리에 떨어지고 마는 겁니다.
1. 하나님의 유업은 우리가 신앙의 본질가운데 거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다.
2.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떠나면 하나님의 유업이 우리에게서 거두어 진다.
3. 우리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유업이 우리에게 회복됩니다.
4. 우리가 신앙의 본질 가운데 거하면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유업이 함께하고 있음을 자동적으로 간주하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유업이 거침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있는 상태인데도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무시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만 붙잡고 그들에게 전하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 거짓은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돌아오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들 삶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회복됩니다. 그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유업이 회복됩니다.
1) 학개시대는 하나님을 떠나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같은 시대입니다. 같은 해에 같은 날은 아니더라도, 똑같은 사건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 겁니다.
*스가랴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저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겠다고 말합니다. 그런구절을 여러군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슥1: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학개시대에도 악한 길, 악한 행위 가운데 행한다는 말입니다.
5.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한마디로 줄이면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려 나를 떠났었다. 내가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서 내게 돌아오라고 거듭거듭 저들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심판을 받아서 다 흩어지지 않았느냐!
학개시대는 예레미야 시대에, 서기전 586년에 남방유다가 멸망하고,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하나님께서 70년 만에 이들을 회복시키실 거라고 했는데, 서기전 538년, 48년후에,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무찌르고, 통합 메대국 왕이 됐을 때, 원년에 측령을 내려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곧바로 성전 짓는 일을 시작해요. 방해로 중단됩니다. 그러다 거의 20년이 지났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신겁니다.
이 시점은 자기 조상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데도, 돌아오지 못해서 심판을 당한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듣지만 이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 조상처럼 되지말라. 저들에게 돌아오라고 했는데, 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와야 돼, 그럼 내가 너희에게 돌아갈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뭘두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인가?.
*학개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이 말은 건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건축에 해당됐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들이 곧바로 성전짖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변 나라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상소했습니다. 아닥사스다왕 1세가 성전짓는 것을 중단시켜 버렸습니다. 성전짓는 것을 다시 계속하면 나라가 멸망하는 겁니다.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거니까요. 중단된지 2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때 학개와 선지자가 온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뭘 말씀하시냐면, 하나님의 전이 폐허 가운데 있는데, 자기일에 바쁜걸두고 하나님을 버렸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에서 떠난 것이 하나님을 버린겁니다.
제가 목이 터져라 이런 설교를 해도 우리 지체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린다는 말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의식을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에서 떠난 것이 하나님을 버린건데요. 하나님을 알고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으면 반듯이,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게 되어 있구요.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의 삶이 들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올바른 신앙입니다.
이 한가지만 보더라도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볼수 있습니다. 이 당시 학개 시대 사람들처럼 정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기 일에는 빠르고, 자기 목적에는 정말 빠르면서도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학개 시대에는 그들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여러시대에 하나님을 떠나는데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온 시대는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더 많은 시대는 못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왔던 좋은 예중의 하나가 학개, 스가랴 시대입니다. 돌아오는데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학개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경외하는 기본적인 자세 조차도 대부분의 성도들 삶속에는 없어요. 이 말은 학개 시대보다 훨씬더 하나님을 떠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만큼 심각합니다.
2)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학개와 스가랴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와 목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성전 짓는 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의 한 부분입니다. 앞전에 보앗듯이 다윗에게 말씀하신 솔로몬을 세워서 성전을 짓게 할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기전 586년, 유다 백성들이 멸망했는데, 70년만에 돌아올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일 먼저 사람들이 돌아온 것은 48년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전이 완성되어지고 하나님께 봉언한 해가 성전이 파괴된 해로부터 정확하게 70년째인 서기전516년에 완성됐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과 한 핵심적인 부분이 하나님이 친히 그 가운데 임하셔서 거하시며 두루 행하시고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이 성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이일에는, 하나님의 언약에서 핵심이었습니다. 신약시대는 우리를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학개1: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오늘날 이런 자세가 없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정당화시킵니다. 하나님께 겸손히 엎드리는 자세가 없어요.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돌이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고집하고 내게 돌아오기를 거절하는도다” 다 그런 상황입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너희가 결국에는 어찌하려느냐”, 예레미야 시대에 하셨던 말씀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3) 하나님께로 돌아왔더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돌아오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반듯이 돌아오십니다.
*학개 1: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학개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말했을까요?. 그 말의 신빙성은 그 말한 사람의 인격만큼만 믿을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약속을 하면 제 인격 만큼만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약속은 많이 하는데, 하나도 않지킨다면 그 사람의 인격만큼 믿을수 있는데, 별 믿을 가치가 없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약속을 하면 목숨을 걸고 지킨다면 믿을 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만큼 믿을만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이말은 이 말을 한 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 나 하나님이라 그 말입니다. 이 말은 나만큼 믿을만하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이 말을 강조하고 계신겁니다. 하나님이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은 어느 주석에 보니까 70인(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역과 NEB성경에도 없답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맛소라 사본에는 이 구절이 쓰여있답니다. [‘언약한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앞절에서 언급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와 연결된 듯하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시 이스라엘에게 함께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면서 여러 성경 구절들을 써놨습니다.
이들이 신앙의 본질로,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내가 출애굽때 너희에게 말한 그 언약과 내 영이 지금 너희 가운데 함께한다. 출애굽 시대에서 이때는 먼 옛날입니다. 그런데 오랜 후에라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따로 안말씀하셔도 이들이 신앙의 본질가운데 돌아와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언약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약속이 지금 함께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생명이 회복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유업 하나님의 약속이 회복됩니다.
* 아는 것 같은데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예를 듭니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말씀입니다. 18절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네게 주셨으니”,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버린 상태에 있으면서 이 약속만 붙들고,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것을 거짓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성경이 아니라서가 아니고요. 주님이 약속하신 약속인데 우리가 신앙의 본질 가운데 떠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버린 상태에 있는, 이 상태에 있으면 우리가 신분적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되 하나님의 유업과 생명은 걷히게 되있습니다. 그게 예레미야 시대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 놀라운 약속을 주셨는데,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이 놀라운 약속이 거두어 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러한 실제적인 역사가 않나타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실제적인 겁니다.
신약성경에 나온 라오디게아 교회만 하더라고 예수를 믿는 교회인데, 주님이 문밖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상태에 있으면서 자기의 마음대로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가면서 이 약속붙들고 이 약속이루어질거라고, 이 약속을 주장하고 이 약속을 전하고 이 약속을 고집하면, 이것을 두고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신뢰한다고 한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의 본질 하나님을 알고,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데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우리 기도중에 따로 말씀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신 모든 약속이 우리 가운데 함께하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지금 주님이 학개시대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4) 이 사실을 아는게 중요합니다.
그들이 신앙의 본질 가운데 돌이켰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영이 그들가운데 함께 하고 있는, 회복되었음을 그들이 아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했습니다.
1:13절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2:4절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고 반복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굳세게 하라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반복적으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말까지 사용하시면서 이걸 말씀하시냐면, 그들이 이 사실을 반듯이 깨닫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깨닫도록, 알도록 하신겁니다.
아는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앞서가시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실 때,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우리 온 삶으로 하나님을 따라 간다는 것은 항상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일일수록 큰 댓가가 요구되구요. 큰 전쟁이 있습니다.
학개시대만 하더라도 그들이 원래 성전 짓기를 시작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반대하면서, 유다가 강해지면 주변 나라들이 불리해지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상소해서 아닥사스다왕 1세가 영을 내려 중단했습니다. 이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고 나라가 망할수도 있습니다. 절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는데, 내가 너희에게 돌아가면 내 모든 약속이 너희와 함께하고, 내 영이 너희 가운데 함께하니 너희가 스스로 굳세게 하라, 스스로 굳세게하라. 스스로 굳세게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일어서라 힘써 일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적으로 어렵고 그러면 낙심돼서 코가 쭉 빠져있으면,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이 오셔가지고, 고개를 들게 하고, 힘이 없어서 있으면 뺨을 때려서 정신이 들게 하고, 귀에다가 말씀하셔서 기운을 불러 일으켜 세울줄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않해요.
다윗도 보면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속에서 낙심하는고, 주 여호와를 바라라 스스로 약속을 붙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는 겁니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네 남은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애굽에서 나올 때 한 모든 약속이 너희와 지금 함께하고 있으며, 내 영이 너희안에 머물러 있도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가운데 회복되는데, 이 약속 붙들고 서서 하나님만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가야 되는데요. 이렇게 나가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이렇게 하기 시작하는데 주변 나라에서 반대하기 시작합니다.
*에스라5: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3.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데, 여기에만 끝나는게 아닙니다.
6절부터 보면 그당시 다리오왕에게 편지를 보내어, 고레스 왕때에 측령을 내려서 돌아가게하고, 성전을 짓게 하셨는가를 얘기합니다.
*에스라 6: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2.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4.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5.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 은 그릇들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 안 각기 제자리에 둘지니라 하였더라 6. 이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 곳을 멀리하여
7.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 8.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성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리노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 9.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10.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11. 내가 또 명령을 내리노니 누구를 막론하고 이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의 집은 이로 말미암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12. 만일 왕들이나 백성이 이 명령을 변조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헐진대 그 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하였더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회복된 겁니다. 생명이 회복된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셨던게 뭐냐면,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자기의 목표로 삼고, 그 일을 자기 온 삶으로 동참하여 나아갈 때 그 앞에 방해가 얼마나 크든지, 댓가가 얼마나 크든지, 그것을 두려워하지말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고,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어나 열심히 일하라는 거죠,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전을 완성하고, 감사해서 봉헌하는 해가, 서기전 516년,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없어진지 정확하게 70년 되는 해에 회복되었습니다.
신명기 20장에 보면 전쟁터에 나가면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신20: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엘리 시대에 블레셋과 전쟁할때도 이 말씀 외웠을 겁니다. 그런데 대패했습니다. 삼만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언약궤 빼앗겼습니다. 왜냐면 이들이 하나님 버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들을 버려 약속이 거두워져 있는 겁니다. 이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상태에 있는데 약속만 붙들고 있는게 거짓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여호사밧이건 다윗이건 누구건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의 본질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할때면 이 약속은 자동적으로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나단만 하더라도 다윗과 하나님이 동행하면서 약속이 그곳에 함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무엇을 행하든지 하나님이 당연히 하실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하나님의 유업과 신앙의 본질에 대한 관계를 올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것이 우리 가운데서 실제적인 역사가 거두워져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볼수가 있는 것이고 그 놀라운 유업이 우리에게 성취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우리가 신앙의 본질 가운데 돌아가야 될 것을 볼수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 다음세대를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로서는 우리의 자원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존재를 다해 사랑하고, 하나님의 의중과 의도를 발견하여, 우리가 온 삶을 드려 거기에 동참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으며 그 영이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스스로 굳세게 일어서 하나님의 목적에 힘을다해 삶을 드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모든 능력과 역사로 그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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