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11장 실제적인 사역

시리즈설교/성령사역의회복

by 발의무리 2018. 2. 9. 11:47

본문

11장 실제적인 사역

 

과실나무의 열매는 가지에서 맺힙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는 성령 사역 시간에 행해지는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나 설교를 들을 때, 그들을 만지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죄를 깨우쳐 주실 수 있고, 그들을 위로해 주실 수 있고, 또 그들을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령의 역사는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이 장에서는 성령 사역의 가지에 해당하는 실제적인 사역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교회의 공적 예배 시간에 성령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들은 개인적인 기도 사역 시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성령의 초청

성령의 사역에서 첫 번째 단계는 성령님을 초청하고, 그 분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임재를 구하라.

성령 사역 시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성령의 임재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의 임재를 초청한다는 말은 이미 앞에서 두 종류의 성령 충만에 대해 살펴보았듯이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해 달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살펴보았듯이, 누가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1113).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성령의 임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아버지, 성령으로 나를 채워주시옵소서혹은 성령님, 지금 이 곳에 임하시옵소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되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가장 좋은 아버지가 그 분에 비하면 악한 자에 불과할 만큼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신뢰하는 단순한 믿음으로 그 분께 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구할 때, 응답하십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15:14-15).

그런데 누가복음 11:13이나 사도행전 4:30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들이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는 성경적이요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입니다.

 

저는 정규 예배 시간 뿐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 사역 시간에도 이렇게 성령님을 초청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제가 성령의 임재를 미처 구하기도 전에 성령께서 벌써 운행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초청할 때, 그 분은 보통 강하게 임재하십니다.

 

(2)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라.

성령님의 임재를 초청하였으면, 이제 그 분이 오셔서 성도들을 만져주시고, 그들을 채워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제 실제로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만져주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기다릴 때 성도들의 초점은 주님께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하셔서 자기를 주님으로 더욱 채워 주시도록 사모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의 삶속에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이 있으면 비춰 주시도록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사모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속사람을 강건케 하여 주셔서 자기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사모하는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더욱 무장시켜 달라고 사모하는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 때 성령님께서 분명한 방법으로 나타나시지않으신다 할지라도 다른 일을 계획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동안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만약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움직이시지 않는다면, 어쩌면 이 시간은 메마르고, 특별한 역사가 없는 시간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아니면 그 시간을 집합적인 기도 시간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마이크 비클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몇 번의 이러한 시간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접하도록 해줌으로써 교회 생활에 유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토임이 몇 차례 더 계속될 때,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절박하게 만들 것이다.“

 

장시간의 침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들의 서두르는 라이프 스타일과 성급한 방법에 주님 자신을 맞추시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을 일으켜 보려고 서두르지 마십시오. 여기에서 인도자는 성령의 역사들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압박을 대적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시작하시고, 자신이 인도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들은 그 분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움직이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그 분의 움직이심을 따라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인도자는 초자연적으로 자연적이고, 자연적으로 초자연적이기를 배워야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사역자이기에 앞서 단순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입는 의복이나 취하는 행동을 통해 특별히 신령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는 결코 우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목적을 위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분께서 그 일을 이루시도록 그 분을 신뢰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다 보면 성령님이 임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셔서 그들이 흐느껴 울기도 할 것이고, 어떤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 외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하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만지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께 더 큰 역사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더욱 놀라웁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더 큰 능력과 역사를 구하기만 하면, 우리 마음은 불만과 불신, 짜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2. 성령의 운행하심을 지켜봄

성령의 사역은 우리 임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델인 예수님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철저하게 성령님의 행하심에 민감하여 그 분의 인도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어차피 사역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으로서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성령의 행하심을 깨닫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피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을 부리는 듯한 자세입니다. 마이크 비클 목사는 이 점에 대해서 이렇게 잘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사역의 스타일을 통해서 인간의 통제 아래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라. 우리는 겸손하게 그분의 사역을 요청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부어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에게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하라고 교만하게 명령하거나 요구함으로써 그 분을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이리저리 부림으로써 하나님의 겸손함을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 분의 임재와 능력을 남용한다면, 그 분은 그분의 임재를 거두실 수도 있다. 하나님의 방문에 관한 역사가 이 사실을 확인해 준다.“

 

성령의 행하심은 두 가지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방법과 초자연적인 방법입니다.

 

(1) 자연적인 방법

자연적인 방법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자연적인눈으로 봄으로 성령의 행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자주 여러 가지 현상들을 동반합니다. 먼저, 이 현상들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 나타나는 반응들입니다. 예를 들어, 젖은 몸으로 전기를 만지면, 온 몸에 충격이 일어나며 심지어 기절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진동이나 쓰러지는 것이 전기가 아닙니다. 강한 전류가 흐른 반응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실 때, 그 반응으로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항상 그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이 나타나야만 성령님이 임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거나 교회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나타나는 현상들은 실로 다양합니다. 다음은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들 중 일부입니다. 쓰러지는 현상, 두려움이나 경외함으로 인하여 몸을 떨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숨을 몰아쉬는 것, 눈꺼풀이 떨리는 것, 술 취한 듯한 행동,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웃거나 우는 현상,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는 것, 오랫동안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하는 행동, 얼굴에 홍조가 나타나며 잔잔하고도 평안한 모습을 띠는 것 등.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도자는 그것을 성령께서 임하시기 시작하신 징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모든 현상들이 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징표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현상들은 귀신의 세력들이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현상들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자는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서, 성령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 번에 걸친 경험을 통해서 성령님의 역사와 그 외의 역사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만지시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위해 먼저 기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성령에서 행하시는 일을 축복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 성령의 역사는 훨씬 증가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을 언제 어떻게 기도해 줄 것인가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반면에 기도 사역자를 통하지 않고 성령께서 직접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져주실 수 있는 공간도 자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기 시작하고, 조종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사역자들이 가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에도, 그 전에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충분히 잠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상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1) 첫째, 특정한 현상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거나 유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현상이 나타나야만 성령께서 임하신 것으로 생각하여 그 특정한 현상이 나타나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그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상자 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 위험성을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성령께서 행하시거나 행하시지 않을 일에 대해서 절대로 아니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고, 또한 항상이란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 주님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그 분을 가두려고 노력하는 상자 속에 자신을 한정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역자들은 사람들이 기도 받으면 쓰러지기를 기대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과 쓰러지는 것을 연관시켜 간증이나 설교 등을 통해서 은근히 그것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역자들은 쓰러지지 않는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거나 기도 받는 사람의 발을 밟고 머리를 뒤로 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유도해 내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인위적인 방법은 전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 할 것입니다. 웃음이라 할지라도 성령께서 임하셔서 나타난 것이면 거룩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조작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도 받는 사람들 편에서도 특정한 현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 사역을 하다보면, 저는 가끔 쓰러지려고 작정하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제가 머리에 손을 가만히 대기만 해도 이내 쓰러집니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그래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다는 인식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받을 때마다 구역질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귀신들이 쫓겨나갈 때 그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경우, 억압이 너무 많아 치유 받는 과정에서 몇 차례에 걸쳐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도 받을 때마다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해야 자유케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진정으로 그들을 치유하셨다면, 왜 날이면 날마다 그러한 현상이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겠습니까?

 

특정한 현상을 유도하거나 기대하는 또 다른 형태는 요란한 외부적인 현상들이 나타나야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신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배경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요란한 분위기를 띄우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어떻게 보면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획일적인 자세는 오히려 성령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틀에 매여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주권자 하나님으로서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성경에 보아도 하나님은 다양하게 임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가시나무 떨기에서 불 가운데 임하셨고(3:2), 이사야에게는 성전에서 하늘을 가르시고 임하셨으며(6:18), 엘리야에게는 호렙산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임하셨습니다(왕상 19:12). 엘리야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얼마 전에 그에게 불로 응답하셨습니다(왕상 18:38). 그러나 이번에는 강한 바람이나 지진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불 가운데 계시지도 않았습니다(왕상 19:1112). 그리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음성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한 현상을 유발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해야 합니다. 인위적인 현상은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공통적으로 진정한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움직이시는가를 주시하여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어떤 때는 매우 요란하게 임하실 것이고, 또 어떤 때는 조용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는 기도 사역 시간에 찬양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민감해야 합니다. 분명 성경에 보면, 다윗이 찬양을 드릴 때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셨듯이, 경배를 드릴 때 성령께서 더욱 강하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자동적이 아닙니다. 항상 성령께 민감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완전한 침묵이 좋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때는 배경음악이 매우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찬양이 사역 시간을 압도해 버리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2) 둘째, 현상들에 대한 설명

현상들에 대해서 가끔씩 설명해 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설명을 할 때에는 암시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그 현상들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할 때 설명해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또한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들을 비치해 두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셋째,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의 초점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현상에 맞추어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주님이요 성령님이지, 현상이 아닙니다.

 

제가 어떤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뜨겁게 드리고 있었습니다. 찬양 중에 성령께서 몇몇 성도를 만져주시자, 어떤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의 관심이 일시에 그 현상에게로 집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징표라는 인식과,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열망이 짙게 깔려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자 찬양 중에 많은 성도들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혹은 그러한 현상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에 맞추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체험이겠습니다만, 그렇게 되자 하나님의 임재가 순식간에 걷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4) 넷째, 현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현상에 대해서 살펴보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타나는 현상을 두려워함으로써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 윔버 목사는 능력 치유에서 이 점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치유에 관해서 말하고 있지만, 성령의 전체적인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나는 우리가 치유를 비는 기도를 할 때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의 임재와 그 능력을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임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그 분의 임재에 대해서 영광을 돌림과 동시에 보다 큰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간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를 비는 기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원리를 기억하기 바란다.

주님의 역사에 대하여 영광을 돌리라. 그러면 그 분께서는 더욱 많은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또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분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에 협조하도록 도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그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소극적이거나 당혹스러운 태도를 취함으로써 치유의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나는 두려워 말고 하나님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 분께서 베풀어 주시는 치유의 능력을 마음껏 받아들이라고 권하곤 한다(능력 치유, 367368).

 

5) 다섯째, 아무런 현상이 없이도 성령님께서는 놀라웁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적인 것으로서, 외적인 행동 보다는 마음의 태도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외적인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속에서 놀라웁게 역사하십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외부적인 현상에만 집착하여 성령 사역 시간마다 참으로 요란한데, 삶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감자를 익히는데, 속은 전혀 익지 않고, 겉만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성령의 능력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외부적인 현상을 성령의 능력과 직결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참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2) 초자연적인 측면

성령의 행하심을 자연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육안으로 봄으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께 민감해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한편으로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성령님과 교통하며,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 중에서도 감동, 인상, 환상, 마음속의 영상, , 다양한 은사들을 통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시면, 저의 책 다가오는 하나님의 군대6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참조하십시오.)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많은 경우에 상징적인 언어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성령께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령님을 초청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던 제 허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왜 갑자기 허리가 아프지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식의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허리 아픈 사람을 치유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인지 혹은 영적인 싸인으로 주신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제 경우,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을 자주 허리 아픈 싸인을 통해서 알려 주십니다. 영적인 허리가 병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분별이 필요한 이유는 성령님께서 상징적인 언어로 말씀하시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성령께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정확히 알기 위해, 여러 면에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 성령께서 치유의 기름부음을 붓고 계심을 저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치유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시는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따라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분별은 지속적인 성령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한편으로는 성령님의 행하심을 지켜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성령님께 속으로 물어야 합니다. “성령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저 사람 가운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보여주신 그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지금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더 기다릴까요?” 그리고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도자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기도사역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 발견되었으면, 이제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은 그때 그때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성령께서 성도들을 직접 만져 주시도록 그냥 기다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해당하는 성도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해서 기도 사역자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도 합니다. 또 다른 때는 사역자들이 성도들을 찾아가서 기도해 줄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성령께 민감하여 순종하는 것이 해답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성도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해서 훈련된 기도사역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해당하는 성도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우선 자발적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기도받기 원치 않는 사람은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어떤 때는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다른 싸인들을 주심으로써 나오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을 불러내시기도 합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셔서 만져 주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도 그 사람은 자발적으로 나옵니다.

 

또한 앞으로 따로 나오게 하면, 사역자들이 기도해 주기가 쉽습니다. 사역자들이 좁은 의자 사이를 비집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역자들이 앞에 나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동안 뒤에 앉아 있는 성도들은 방해 받지 않고 성령님과 교제하며, 성령님의 만져주심과 채워주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받을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면, 저는 기도 사역자들로 하여금 다음의 모델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가르칩니다. 이 모델은 존 윔버 목사가 그의 책 능력치유에서 정리한 모델입니다. 저는 이 모델이 가장 효과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 사역 때마다 그저 성령의 기름부음을 위해 간단히 안수하며 지나갑니다. 물론 성령께서 때로는 기름부음을 위해 그렇게 축복하며 지나가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기름부음도 전적으로 성령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을 따라 기도하면,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포함하여 그들이 처한 상태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그들을 전인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입니다.

 

물론 존 윔버 목사는 치유 사역을 위해 이 모델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은 단순히 치유 사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성령의 사역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델은 공적 예배 시간의 사역 시간에만 쓰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기도 사역 시간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그 모델은 다음의 다섯 단계를가지고 있습니다.

 

 

(1) 1단계 : 면담

이 단계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어내는 과정입니다. 물론 공적인 예배의 기도 사역의 경우, 앞에 나온 사람들은 이미 특정한 제목을 위해 기도를 받으러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여러 종류의 목적을 위해 기도 받으러 나온 성도들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무엇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인 지를 묻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2) 2단계 : 진단

이 단계는 기도 받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찾아내는 단계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나 은사를 축복하는 일에는 진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유사역에서는 진단이 필수적입니다. 그 병의 원인이 정확하게 진단되어져서 그것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기도가 별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병이 오는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상은 허리가 아프지만, 그 원인은 남을 미워하는 것, 사고, 회개하지 않은 죄 등 다양할 수 있습니다.

 

진단은 상대방의 말과 성령님의 음성 양쪽으로 귀를 기울임으로써 합니다. 기도 받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수입니다.

 

올바른 진단을 위해서 성령께서 주신 감동을 기도 받는 사람과 같이 나눔으로써 그것을 확인하고 또 해답을 같이 찾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사역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기도하고 또 대화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3) 3단계 : 기도의 선택

이 단계는 상대방을 위해 어떠한 종류의 기도가 필요한가를 찾아내는 단계입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에 따라 드릴 기도의 종류는 달라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문제가 귀신으로 인한 것이면, 축사를 위한 기도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기도는 상대방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000000을 치유해 주세요.” “하나님, 000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소서.”

 

둘째,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님의 인도아래 되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위해 하나님께 성령의 기름부음을 구하는 것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대방에게 축복하는 것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특정한 은사나 성령의 기름부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축복할 때, 그것들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을 000에게 축복합니다.”

 

셋째, 명령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치유 기도는 명령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먼 자에게 눈이 열리라고 명령하셨고, 앉은뱅이에게 일어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경우에도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넷째, 단순히 치유나 특정한 상태를 선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폴 캐인 목사의 사역에서 이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그럼 그대로 치유되거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역시 성령님의 인도가 필수입니다.

마지막으로, 귀신을 꾸짖는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또 제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4) 4단계 : 기도의 시행

이 단계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한 답변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사역자는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만지시는가를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계속해서 기도해 나갑니다.

 

이 단계에서 추가적인 면담과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과정에서 성령께서 상대방의 원인에 대해 추가적인 사실을 알려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진단으로 돌아가 그 사람과 대화하며 그 원인을 더욱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고, 또 그것에 따라 필요한 기도를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에만 때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5) 5단계 : 후속 조치

사람들이 치유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치유를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 있으면,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해 줍니다. 그 조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에 기초할 수도 있고, 또 기도하는 과정에서 주신 성령님의 감동에 기초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기도 모델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기를 원하시면, 존 윔버의 능력 치유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사역자들이 앞에 나온 성도들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기도해 주고 있는 동안, 인도자는 앞에서 계속해서 성령님의 행하심을 지켜보면서 성령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성령께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계속해서 알려주십니다. 많은 경우에 성령님의 임하심은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는 한 번 밀려왔다가 잠시 잠잠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밀려옵니다. 더 큰 파도가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령의 임하심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기다리면, 성령님은 계속해서 마치 파도처럼 임하십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다음은 인도자가 기도사역을 인도하면서 참조할 수 있는 몇 가지 추가적인 사항입니다.

 

기도 사역을 하면서 정규적으로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는 종종 불신자도 있을 것이고,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증 시간이 있다면 매우 큰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증들은 집회에서 일어난 현상들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졌거나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었나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저는 소위 외적인 능력이나 구하는 사람들의 간증이 얼마나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과의 교제보다 그저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하는 삶으로 변질시키는가를 여러 번 지켜보았습니다.

 

만약 인도자가 한 개인이나 회중의 한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보이려면, 전체 성도들을 유익케 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도자는 말에 있어서 신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에서 너무 확신에 차 있거나 또 너무 독선적인 자세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성령의 사역 시간을 몇 차례에 걸쳐서 가졌는데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영적 갱신의 역사를 불어넣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아온 사람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말세지말에 전세계에 걸치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 의 부흥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59:20). 지금은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그 역사가 가까운 때입니다. 그리고 그 전초적인 역사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때입니다.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교회 가운데 성령님의 그 놀라운 역사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마치고자 합니다.

 


'시리즈설교 > 성령사역의회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장 성령사역의 요인  (0) 2018.02.09
제9장 영적 분위기  (0) 2018.02.09
제8장 성경적인 원리들  (0) 2018.02.09
제7장 성령 충만  (0) 2018.02.09
제6장 성령 세례  (0) 2018.02.0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