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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회복(5) 하나님을 경외함과 예배

시리즈설교/예배회복의삶

by 발의무리 2006. 11. 9. 09:58

본문

예배회복(5) 하나님을 경외함과 예배

히12:26-29


(히 12: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2: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3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다.

 2)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는 다가오는 하나님이 부흥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3)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지 예배 가운데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1.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1)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길지니 -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음(NIV)


종합 -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며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이 말라기 1장에 나옵니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 하나님을 경외함


 (말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 -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멸히(멸시) 여기는 것이라는 겁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예배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지 아니한 예배같이 들리지만 2장 4-8절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단순히 정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말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말 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 2: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말 2: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말 2: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4절 이 명령 - 예배

레위 - 레위지파 조상(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직분)

지금 레위와 언약을 세운 것은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지금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정성이 없는 예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그 그 예배를 받으시지도 않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라기 2장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 본대로 호6: 하나님께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호세아6장에서는 그 번제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시 그들은 가장 좋은 짐승, 가장  살진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번제를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예배는 신앙의 본질은 담는 그릇인데 그 예배 가운데 신앙의 본질인 인격체 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하는 것이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에 신앙의 본질이 들어있지 않으면 아무의미가 없음.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단순히 우리의 외적인 것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장, 정성, 절차가 아님)


 렘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그렇게 먼 곳에까지 가서 비싼 값을 주고 향품을 사서 하나님께 드렸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으시겠다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이기에...


시바 - 여기서 일본까지의 거리 얼마나 많은 희생이 들어갔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R, 희생을,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왜! 외부적으로 아무리 많은 정성이 들어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에 그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을 경외함은 외부 모양에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말라기 1장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으면서,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멸시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더 문제는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이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특 바리새인들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자가 오면 보면 음욕을 품게 될까봐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코가 깨지고, 이마가 깨지고. 그래서 피 흘리는 바리새인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그랬을까요?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평가를 하나님의 평가보다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닙니다.


예) 우리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우리의 찬양의 모습은 전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보세요 말라기 시대 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주님이라 부르면서도 그들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주님이 아닌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주인의 말씀에 선별적인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순종하고, 그 순종함에 있어서 대가를 지불하고, 나에게 어려움이 온다면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것이 우리 모습은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우리의 모습이나 다를 것이 뭐가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라면 말씀 순종할 때 대가,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쓸 것이며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아닙니다. 목사님을 목사니까 그렇게 설교하도 듣는 우리는 든는 데서 끝나는 거예요, 아예 우리가 어떻게 다 지킬 수 있어 라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2.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부흥을 위하여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다시 한번 부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흥이 오려면 반드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흥과 예배회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과 관심 - 예배회복에 있음.


하나님의 부흥에 관하여 히12:26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 12: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2: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그때는 출19:8 (출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의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을 때 땅이 진동하였어요. 그 사건을 지금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는 말씀은 학개2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 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즉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영광으로 임하셨듯이 마지막 때에 영광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임하시기 위하여 흔들릴만한 모든 것을 흔들 것이라는 겁니다. 뭐하기 위해서 이제 흔들리지 아니한 것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여기 흔들리지 아니 한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 하나님의 기준에 해당하는 것만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암7:7에 보면 하나님의 다림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서 똑바로 세워지길 원하십니다. 줄이 없으면 벽돌은 삐뚤어지게 쌓여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영적으로 태가 닫혀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인수가 감소,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그치고, 하나님의 도우심, 인도하심, 간섭하심, 보호하심 이것이 이론적으로 믿지 우리의 삶에서 전혀 경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흔드심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다 무너지게 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기준에 세워져야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실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여 세워질 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배를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기준에 새롭게 새워지는 것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부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일마다 예배의 회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예배로 회복시켜 다가올 부흥을 준비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예배로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3.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할지니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이 단어가 왜 여기 나오나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신4:2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여기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과 질투가 연결하여 나오는데 이것을 평행법으로 같은 의미로 더욱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할지니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하나님이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드리지 않으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레 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 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 10: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나답과 아비후 제사장 - 당연히 제사를 드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릴 때 다른 불을 드렸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기준대로 하지 않고 임의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을 보존하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불이 나와 살라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경외함이 없는 제사를 드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지 않은 곳에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심판이 없다고요? 영적으로 어두움, 태가 막힘, 죄를 이기지 못함, 이것이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거예요.


말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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