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3
주님은 말씀 선포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사역(영적 전쟁)을 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에 신적인 침입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영적 전쟁 차원에서보아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보통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자료들을 보는 관점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즉 두 가지 관점에서 보곤 합니다. 하나는 사탄을 향한 관점에서 보는 견해가 그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관점이 그것입니다.
사탄을 향한 관점에서 보는 견해의 주된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사탄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사역은 실로 이 땅에서 사탄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관점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탄을 우리의 원수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관점이 그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보는 견해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인도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두 견해가 다른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맞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켈러스라는 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과 바울서신을 보면 약 80%는 예수님의 사역을 사탄을 향한 것으로 보고, 20%는 하나님을 향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에 요한복음과 히브리서와 계시록은 80%는 하나님을 향한 것으로 보고 20%는 사탄을 행한 것으로 보았다.
결론은 예수님의 사역이 둘 다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일을 멸하고 사탄과의 전쟁을 통해 사탄의 일을 파하시기 위해 사역하신 한 편, 동시에 우리들을 사탄에게서 자유케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두 가지 관점을 다 취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되, 신적인 침투자로 오셔서, 사탄의 일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회복하신 사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의 사역 역시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얼마나 영적 전쟁이며 얼마나 기도가 필요하며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미 확립되었으되 아직 주님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통치 아래에서 죄의 영향력 아래서 신음하고 얽매이며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전쟁을 하시되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심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 즉 영적 전쟁을 감당하셨습니다. 말씀 선포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영적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즉 말씀과 사역이 하나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말씀만 가지고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선포하셨으며, 동시에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실재인 것을 보이시며 확장시키셨습니다. 즉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임한 것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은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모든 기적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특히 마가복음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1절에서 1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이 점을 유의하면 더욱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각 복음서에서 첫 번째 다루는 사건이 무엇이냐를 염두에 두고 읽는 것입니다. 각 복음서마다 다루는 첫 번째 사건들이 각각 다릅니다. 이 말은 각 복음서마다 기록된 사건이 첫 번째 사건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첫 번째 사건이 아님에도 첫 번째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 복음서의 저자는 이 사건을 앞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실 사역의 모델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사건이 갖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은이 이 사건을 맨 처음 둔 이유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러한 관점에서 강조할 것이라는 의미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은 가버나움 사건을 우선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하나님 나라의 말씀 선포와 능력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마가복음서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가버나움 회당 사건에서 우리는 두 가지 권세가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한 권세가 있습니다. 즉 말씀의 권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실재를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이론을 나열하는 가르침과는 달랐던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이론을 전하는 것과 하나님의 실재를 전하는 것은 그 능력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또 하나의 권세는 귀신이 쫓겨가는 사역의 권세입니다. 두가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는 사도들의 사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십자가의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단순한 이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는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이론의 나열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실재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메시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성령의 나타남이 함께 있었음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2장 4절과 5절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와같이 사도 바울에게는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권세가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말씀의 권세와 능력 사역이 다른 영역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둘아 아니라 하나라는 점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입니다.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영역들입니다. 마가복음 1장 32절부터 39절입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여기서 전도하셨노라는 말씀은 말씀 선포와 하나님 나라의 능력 사역을 함께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혹자들은 38절의 구절을 보고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에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어떤 다른 일보다도 전도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전도하는 일은 매우 귀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전도’ 라는 단어는 영어로 proclaim 또는 preach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말씀을 선포하시거나 설교를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단어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전도라고 이해해 버리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전체적인 면에서 볼 수 없게 됩니다. 38절과 39절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에서 말씀과 성령은 함께 있었습니다.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역’ 하면 둘이 함께 연상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역을 통해 사탄과의 전쟁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영적 전쟁입니다. 이 점은 영적 전쟁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침투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탄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웠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왔기에 더 이상 사탄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왕권을 행사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귀신들을 내어쫓으시고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또한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면서 전인적인 치유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이 일로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들을 멸하시고 사탄의 영향력을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 사역과 성령 사역을 함께 감당하심으로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영적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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