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5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 전쟁의 승패는 결정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전쟁은 우리가 나가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가서 싸우는 싸움은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싸우는 싸움은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복음을 전파한 후에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백성들을 건져내어 하나님 나라에 드리는 것이 우리가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 싸움을 싸우는 격이 되기에 위험합니다. 도리어 억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전쟁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억압을 초래합니다. 죽는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싸운다고 하면서 사탄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다보니 오히려 사탄의 임재를 초래한 격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귀신을 좇아낼 때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를 대적하면 우리들도 당연히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도 없는데 마치 길거리를 가로지르며 다니며 기도하면 지역영들이 묶일 것이며 그렇게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유다서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역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먼저 지역을 위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른 사람들은 관심에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 지역의 죄악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은밀한 기도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없이 나아간다면 우리 임의대로 영적 전쟁을 하면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위험할 뿐만 아니라 효과 역시 없을 것입니다.
서울을 위해서 기도하실려면 이 민족의 죄악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서울의 죄악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쟁은 그 분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통해 영적 전쟁을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찬양은 경배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경배이지 영적 전쟁의 수단이 아닙니다. 물론 찬양을 드릴 때 영적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경배할 때 하나님께서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이 영적 전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들여 우리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찬양과 경배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물론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우리를 치유하실 수도 있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이 임하셔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이 임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빛을 비추실 수도 있습니다. 늘 말씀드린대로입니다. 그러나 찬양은 치유의 수단도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수단도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들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계시록의 경우나 여호사밧의 경우가 다 그렇습니다. 여호사밧의 경우 영적 전쟁의 수단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 나아갔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만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노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싸우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싸우는 싸움과 다릅니다. 우리들이 싸운다면 경배는 절대로 되질 않을 겁니다. 실제로 이렇게 영적 전쟁하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경배가 되질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찬양하는 목적은 경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께서 필요하신대로 적을 멸하십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옴 맘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기에 영적 전쟁의 비결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전 지금 땅을 밟으며 영적 전쟁하는 것을 비판하는 차원에서 이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방법을 성경에서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땅을 밟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이 진정 성경적인가 하는 것은 이런 각도에서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 각도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똑같은 방법을 쓰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똑같은 방법을 쓰시지 않으시는 이유는 영적 전쟁의 비결이 방법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민감해지는 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민감해지기 보다는 방법을 찾기 쉬워집니다. 전에 그 방법대로 하니까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티모디 워너가 쓴 책 중 영적 전쟁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분은 트리니티 신학교 교수입니다. 그분이 선교사로 있으면서 겪었던 영적 전쟁의 부분을 지엽적 차원보다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설명한 책이 그 책입니다. 그분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것은 영적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에서의 승패는 그들이 갖고 있던 무기의 종류나 숫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 거대한 적군 앞에서도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하면 아무리 작은 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대패하였습니다. 티모디 워너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면서 한 번도 똑같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다.
광야 생활 40년동안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강을 건널 때에도 한 번은 갈라놓고 건너나게 하시더니, 또 한번은 법궤를 들고 건너라고 하십니다. 반석에서 물을 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은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시더니 또 한 번은 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는 백성들의 평가에 속이 상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티모디 워너는 잘 지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으시는걸까요? 티모디 워너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영적 전쟁의 승리는 방법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감에 있어서 모든 전쟁의 승리는 방법에 있지 아니합니다. 땅을 밟고 전쟁을 하는 방법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깨트릴 때 단 한 번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그 후에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만약 여호수에게 뿐만 아니라 다윗, 솔로몬, 이사야 등등 모든 사람들에게 땅을 밟으면서 전쟁을 하라고 하셨으면 우린 당연히 땅을 밟으로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이후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경우와는 달리 여호사밧 왕에게는 일렬로 서서 적군을 향하여 나아가라고만 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일렬로 서서 적군을 향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전쟁에서 이길 것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다가 금방 쑥밭이 될 수 있습니다. 일렬로 서서 나아가는 방법은 여호사밧 왕에게 말씀하신 방법일뿐입니다.
자, 영적 전쟁은 방법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방법을 되풀이 하는 일에 전쟁의 승리가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방법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이 결국 핵심입니다. 즉 하나님께 민감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영적 전쟁을 하면서 살게됩니다.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이 싸움을 이 땅에서 싸우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사탄은 우리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을 방법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델이시며 본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선포와 성령의 사역으로 영적 전쟁을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은 똑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에다 찬양가 경배를 하나 더 삽입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전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찬양과 경배를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 분의 뜻을 찾게 됩니다. 성경도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길을 좇아감에 있어서 원수가 훼방을 놓으면 당연히 물리쳐야 합니다. 억압하는 세력이 등장하면 예수님이 그리 하셨던 것처럼 당연히 물리쳐야 합니다. 귀신들이 역사하면 당연히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권세는 다시 예수님께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쓰임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7강 - 조지 엘든레드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 (Ⅱ) (0) | 2007.10.06 |
---|---|
6강 - 조지 엘든레드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 (Ⅰ) (0) | 2007.10.06 |
4강 - 우리들이 해야할 하나님 나라의 사역 (0) | 2007.10.06 |
3강 - 주님은 말씀 선포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사역(영적 전쟁)을 하셨습니 (0) | 2007.10.06 |
2강 -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이미 이 땅에 임했습니다 (0) | 2007.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