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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강 - 하나님 나라의 완성(完成)

강의자료/하나님나라

by 발의무리 2007. 10. 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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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완성(完成)




  하나님 나라는 두 단계로 임합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앞으로 주님의 재림시에 임할 하나님 나라가 그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대와 다가오는 세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아담의 타락 이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를 가리킵니다.  다가오는 세대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어 지배하시는 세대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다가오는 세대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세대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 초림 이후를 가리켜 다가오는 세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 세대는 끝이 나고 다가오는 세대가 완성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이후 재림때까지는 두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초림이후 사는 우리들은 두 세대가 공존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대와 다가오는 세대가 공존하는 세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이 세대에 속하지 않고 다가오는 세대에  속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비록 이 세대에 살곤 있지만 이 세대에 속하지 않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고 불신자들과는 달리 전혀 다른 주인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세대와 다가오는 세대와의 관계를 도표로 표시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 아 래                   


                예수의 초림              예수의 재림

 

이세대

시작(아담)

 

 

이세대끝

다가오는     세대  시작

 

 

 

 

       영원

              하나님나라도래    현재      하나님나라완성


〈 도표 1 〉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대에 살지만 이 세대에 속하지 않은 일로 그 가운데에서 많은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모든 피조물들이 현재 탄식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탄식하는 삶’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대에 사는 동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자체가 탄식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좌절 속의 삶은 아닙니다. 비록 눈물을 흘리더라도 낙망하는 삶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성도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D-Day에

예수님의 재림은  V-Day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스카 쿨만이란 신학자는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과 영적 전쟁의 차원에서 보아 예수님의 초림을 D-Day에 비유하였으며, 예수님의 재림을 V-Day에 비유하였습니다. 둘 다 전쟁용어입니다. D-Day는 Decied Day의 약자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사용된 용어입니다. V-Day는 Victory Day의 약자로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군의 항복과 아울러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날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은 독일군에게는 사실상 전쟁패배를 가져온 전투였습니다. 연합군들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승리함으로 유럽으로 진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두보가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에게는 사실상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의 제2차 세계대전은 여기서 끝이 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군이 사실상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전쟁이 종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 개월 후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이 공식적인 세계대전 종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참전 군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승리로 끝났을 때 대부분의 군인들은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전쟁의 승리는 그 후 몇 개월이 지나 독일군의 수뇌부가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에 있었습니다. 역사는 연합군이 상륙작전에 성공한 이후 독일군의 완전한 항복이 있기까지의 몇 개월동안 제2차 세계대전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들이 그 기간동안 생겼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가 그 기간동안 벌어졌어도 어느 누구도 연합군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갖는 의미 때문입니다. 심지어 독일군들까지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패배한 이후 자신들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사건을 D-Day에 비유한 걸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신 일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서 부활하신 일은 사단에게는 패배나 다름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사단으로부터 영적 승리를 얻어내셨습니다. 죄의 세력이 이미 파하여졌으며 사단의 권능이 멸하여졌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승리했다고해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근본적인 승리를 거두셨지만 주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죄의 세력이 완전히 멸하여지며 사단이 불못가운데 던져지는 순간까지는 전투는 치열할 것이기에 D-Day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초림 이후 재림때까지 영적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승리하였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모시고 있기에 질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는 질 수 있습니다. 전쟁과 전투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재 질 수 없는 전쟁 곧 승리가 예견된 전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다가오는 세대’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다가오는 세대’의 능력과 권세가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며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성도들은 이미 승리가 확보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어 봅니다. 첫째, 우리들은 영적 전쟁에서 이미 승리가 확보된 싸움을 싸운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는 우리에게 확보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승리가 확보된 싸움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영적 전쟁의 특징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를 보고 귀신들린 사람이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소리치자 “아냐”라고 반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해서 축사를 시작했는데 열시간이 넘도록 다투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귀신이 나가는데 지쳐서 나가는 형상을 하고 나가더랍니다. 그렇습니다. 귀신은 일단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쫓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는 지쳐서라도 나가는 법입니다. 승리는 항상 우리에게 있게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가 확보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이기는 전쟁을 치루는 중입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부터 15절입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승리가 확보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둘째, 이미 승리가 확보된 영적 전쟁을 하되,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점입니다. 승리가 확보되었다고해서 망령되이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 영적인 능력, 영적인 권세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그 승리, 그 능력, 그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지혜를 따라 행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행하여도 승리가 보장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특별히 영적 전쟁과 관련하여 어떤 신학자는 ‘목잘린 닭’과 같다고 합니다. 목잘린 닭은 금방 죽지는 않지만 곧 죽게됩니다.


  오늘날 사단은 목잘린 닭의 운명입니다. 발광하고 있지만 곧 죽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사단의 운명은 결정되었습니다. 운명의 집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심판주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목잘린 닭의 운명이지만 여전히 사단은 발광을 하면서도 능력이 많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임의대로 행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려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이 어느 곳에 있다는 의미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과 아울러 죄를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둠의 세력들은 그곳에 있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음란의 세력이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그 곳에 있는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귀신아 물러가라”외치며 지역영을 묶는 행위를 한다고해서 어둠의 세력들이 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려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둠의 세력, 음란의 세력들을 대적할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교회가 먼저 임의대로 행했던 일들을 애통해하며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자백하고 고백함으로 먼저 하나님의 주권 하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단의 세력을 멸하는 권세와 능력은 먼저 회개하고 죄를 뉘우치며 악한 길에서 떠나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승리를 주십니다.


  지역에 있는 영을 이기기 위해서는 지역에 사는 성도들과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연합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며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있는 영향력을 끊을 수 있는 권세를 주십니다. 지역영을 묶는 일은 아느 개인이나 한 교회가 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중보기도가 요구됩니다. “이 지역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 가정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조상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에서 죄의 영향력을 끊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하나님의 통치와 권세 아래 들어오게 하고 악의 영향력을 버리게 해야 합니다. 이렇듯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서 싸우는 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하셔서 어둠의 능력을 멸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초점이 사단에게 가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은 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초점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찬사를 드리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이 지역의 음란의 영을 대적하길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 조상과 우리 가정 우리 친구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돌이키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후,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이 땅을 고쳐주시고, 친히 임하셔서 어둠의 세력들을 멸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권세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여주옵소서”라며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해나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귀신들을 대적하는 일은 지금 말씀드린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가운데, 어떤 사람을 귀신이 묶고 있을 때 또는 귀신의 세력들이 우리들을 대적해 올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대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 들어가 있으면서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시니까 사단의 세력들이 반격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족들이나 환경, 군중 등을 통해서 대적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확보되어 있습니다. 비록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면 하나님이 친히 싸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기도 가운데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원어의 뜻은 내일의 양식을 오늘 주옵소서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내일 임할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오늘 주셔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양식을 달라는 의미도 있지만 말입니다. 당연히 이 의미는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하나님 나라의 기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달라고 함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십자가의 복음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사역을 행할 때 준비되어집니다


  부흥과 관련하여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땅에 부흥만 부어진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흥만 온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이미 성도들에게 임했습니다. 그 증표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흥이 임하면 분명 더 큰 일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흥이 임하기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세는 옳지 않습니다. 부흥이 저절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과 권세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삶을 살면서 더 큰 능력을 구하는 게 부흥을 구하는 삶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을 사는 법을 알지 못하면 부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흥만 임하면 모든 교회가 잘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 부흥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야 합니다. 오늘 사랑 안에서 빚어져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개인적인 주가 되셔야 합니다. 그럴 때에라야 하나님이 부흥으로 임할 때에 더 큰 능력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부흥은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더 강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이제 그 권세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권세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는 비할 데 없이 큽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눈에는 죄가 훨씬 더 크게 보여집니다. 예수님이 아담보다 큰 만큼 은혜가 죄보다 큽니다. 죄의 능력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온 인류를 몽땅 죄 가운데 빠뜨릴 정도니까요. 죄 가운데 살 때에는 모르지만 성령의 조명으로 죄를 이겨볼라치면 참 그 능력이 크다는 사실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죄가 세상에 들어온 모습을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것에 비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팔당댐의 물이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죄의 능력이 크다고할지라도 은혜가 훨씬 더 큽니다. 예수님은 D-Day 를 통해서 죄를 이기는 능력을 이미 우리 가운데 부우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자주 넘어지긴 하지만 죄를 이기는 일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와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게 눌린 좌절하는 삶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은혜로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고 십자가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면 이기기 시작합니다.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삶이 가능하도록 은혜를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2장 20절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위의 구절에 고백한 것처럼 우리 역시 실제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초신자건 오래된 신자건 상관없이 배울 수 있습니다. 또 모두가 다 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Already, But Yet 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이 함께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완벽한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지만 이미 승리가 임했기 때문에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도 비록 병이 들었지만, 또 디모데의 병을 고치지 못했지만, 이렇게 완벽하진 않았지만,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쳤습니다. D-Day를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이 부어진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완성될 것입니다. 죄는 완전히 파해지며 이 세상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와서 성도의 부활이 있을 겁니다.


성도의 결말은 정해져 있기에

주님의 주권 아래서 안식하십시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이루어졌고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증인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은 전체적으로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무릎으로 예수님 앞에 꿇게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정하신 코오스를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성경은 미리 쓰여진 역사입니다. 말세에 일어날 역사를 미리 쓴 것입니다. 물론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것이기에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최후의 승리입니다. 성경에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이 죽을까봐 조마조마해 합니다. 엄마는 빨리 자라고 성화입니다. 그래도 잘 수 가 없어요. 그래서 꾀를 냈는데 맨 마지막 페이지를 본 것입니다. 거기에 모든 소설의 내용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어떤 내용이 나와도 나중에는 결국 “해피 엔딩이니까” 하며 잘 잤습니다.  


  여러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성도에게는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차피 결말은 해피 엔딩이니까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시기 바랍니다. 과정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해피 엔딩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슬아슬한 사건들을 많이 만납니다. 사건뿐만 아니라 뼈아픈 사고도 많이 만납니다. 우리들을 흔들리게 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억합시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는 승리입니다. 이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 계시록 21장의 웅장한 승리의 노래를 들어보십시오. 1절부터 4절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또, 고린도전서 15장의 담대한 승리의 노래를 들어보십시오. 참으로 가슴 벅차게 만드는 노래입니다. 고린도전서 50절부터 58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은 흔히 ‘부활장’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장의 주요 강조점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닙니다. 3절부터 22절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보십시오. 고린도교회 가운데 “우리는 죽으면 끝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죽은 성도에게 부활이 있을 것을 말한 성경이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죽은 자들이 그 안에서 살아날 것을 말한 성경이 15장입니다.


  부활절에 계란을 먹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습이 생겨난 이유가 있습니다. 계란에는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습니다. 씨가 있는 게 있고 없는게 있습니다. 그런데 씨가 있는지 없는지를 맛을 보아서는 모릅니다. 차이는 암탉이 품으면 달라진다고 합니다. 무정란은 암탉이 품어도 썩습니다. 왜냐하면 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믿으면 하나님의 속에 씨앗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모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씨앗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성령은 보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속에 있는 자는 그 날이 오면 생명이 주어질 것이고 없는 자는 썩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막연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받을 그 나라의 보증입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만큼 확실합니다. 성령님은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완성될 것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님을 주셨으니까요. 성령님은 단순한 확신이나 느낌, 생각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단순한 감동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막연한 미래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임을 기억하십시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하십시오. 바라건대 부디 주의 일에 더욱 동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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