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십자가와 성령 컨퍼런스 선택강의 중보기도2강(신명림간사)
강의: 신명림간사 정리:엄무환목사
제2강 중보기도
경배와 찬양 "주의 사랑 부끄러워 않겠어요."
주의 사랑엔 수치가 있다.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겠는가.
어제 포기하지 말라는 얘길 했었는데 주님이 조정하시길 원하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불신의 견고한 진 때문이다.
우리 속에 포기해야할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성령님이 포기하게 하시는 것,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기초해서
포기할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을 분별해야 한다.
다윗의 장막
1. 명확한 뜻이 뭔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자.
아모스 9:1-15
아모스 시대-물질의 번영이 극에 달했던 시대.
그러나 영적으론 암흑의 시대.
11절 말씀을 보면 심판을 선포.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심판을 명하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장막을 세우겠다.
하나님
다윗의 장막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15절-다시 뽑히지 않으리라.
하나님이 다윗을 장막을 세우시고 회복시키시겠다는 것.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이 뭔가?
다윗의 장막에 대한 열망을 주시는데 뭔지는 모르겠더라.
명확히 알아야 한다.
행 15:16-18
이 말씀의 배경-유대인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
논란이 일어남
다윗의 장막을 세우겠다
사도행전 15장은 아모스 9장의 내용을 인용함.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
아모스-주를 찾게 하려함이라는 문구가 없다.
사도행전-주를 찾게 하려함이라는 문구가 첨가되었다.
2. 다윗의 장막=하나님이 스스로 택하신 곳.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부흥을 일으킬 수 없다.
다윗의 장막을 세울 수 없다. 하나님이 세우신다.
하나님을 찾는 곳에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장막은 주를 찾는 자들 가운데 세우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중 하나님을 찾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셔서 다윗의 장막을 세우신다.
=하나님 외엔 소망이 없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찾는 자들 가운데 세우심.
그런데 본질이 없는 의식으로 가득한 곳엔 다윗의 장막을 본 뜬 시스템이 24시간 동안 돌아간다 할지라도 세워지지 않음.
주님 찾는 자리에 정말로 있는지는 열매를 보면 안다.
처음 새물결 오면 소망이 생긴다. 그러나 기간이 지나도 열매가 없으면?
뭔가가 열매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하고 떠난다.
-이 사람은 하나님만을 찾는게 아니다.
아무리 기도의 내용이나 새로운 용어를 습득해서 모방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되면 안된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나아보이기도 함.
주님과의 친밀함을 위해 주님을 찾으시는가.
내가 세워지기 위해 주님을 찾으시는가.
하나님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야 한다.
복음이란 내가 부인되는 것.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즉 열매가 없어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야 한다.
내가 안 세워져도 내가 열매 안 나타나도 주님을 찾아야 한다.
나=십자가에서 예수그리스도와 죽었음을 인정하라.
이젠 예수님만 살아야 한다.
요 14:6-예수님만이 생명, 진리, 길이라고.
그런데 사단은 어찌나 교활한지 육체에 속한 할례를 하게 한다.
육체-자기 자랑
육체 붙잡는 동안-아니다.
내가 부인되는 자리에 서야.
그럴려면 십자가 통과되어야 한다.
왜 구약의 많은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다윗의 장막을 세우시려 하셨나.
다윗은 전 삶으로 하나님을 경배했기 때문이다.
삼하 7:22 내가 이보다 더 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뛰어 놀리라.
주님을 찾고 주님을 구하는 진짜 동기가 뭔가?
하나님이 우릴 주님께로 한걸음 인도할수록 더 낮아진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짖어지는데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망하는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다윗의 장막-요 15장의 포도나무의 삶
요 17장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안에 거하는 삶
이게 실제가 되기 위해 하나님이 내 육체를 부단히 깨뜨리신다.
시 23: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심.
그러므로 우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야 한다.
코 깨어지고... 하나님의 길 모르는 성도.
하나님의 길 알려주고 거기에 서면 회복됨.
그러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정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열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진다.
그러면 문제가 나를 억압하지 못한다.
주님의 안식 가운데 거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면 하나님 나라 누린다.
주님 따라가다가 안식 깨어지거나 문제가 나를 다스릴 경우 뭔가 내가 문제 있다는 증표다.
왜 그럴까?
어떤 문제가 생기면-하나님이 나를 가르치시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라.
어떤 문제가 생기면 승리를 선포하라.
답이 금방 나오지 않아도 포기하지 마라.
주님을 계속 찾아라. 그러면 주님이 비추신다.
"너는 왜 나만이 기쁨이 되지 않니?"
주님을 찾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주님만 찾고 사랑하고 목적이 되지 않는다.
어떤 문제속에서도 주님만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님을 찾으면서 '+알파'를 찾는다.
요것도 되어졌으면 하는 바램.
"하나님, 하나님만을 바라겠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했더니 뱃속에서부터 힘이 올라옴.
문제가 다스려짐. 즉 문제가 나를 다스리는게 아니라 내가 문제를 다스리게 됨.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솟아옴.
찬송가 495장. 초막일지라도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나님나라.
'뭐가 되고 안되고, 왜 난 안될까. 왜 성도들이 안세워질까.' 이런 것들이 사단의 궤계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지게 하는 게 사단의 술책이다.
내 안에 하나님외의 다른 요소가 끼어드니까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안식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 차단됨.
특히 사역자는 열매에 너무 신경씀.
주님에게서 열매 쪽으로 마음이 쏠림.
열매 때문에 주님 찾다가 열매를 위해 방법시도.
이게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열매 주신다.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에 개의치 않음.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을 소중히 여김.
온전히 주님만을 구하는 자리에 서야.
사단-1)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한다.
2)사람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명분하에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3)작은 일엔 관심을 갖지 않게 한다. '내가 관여할 일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함.
그러나 하나님 사랑하면 영혼사랑하게 된다. 영혼을 섬기게 된다.
섬기는 자리에 가면 하나님의 보호막이 쳐진다.
하나님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가면 나의 연민...등이 떠나간다.
간증) 어깨쪽이 땡기고 아팠다. 오십견으로 생각되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요? 하나님께 물었다. 안가도 된다는 감동이 왔다.
다윗의 장막을 끝내고 가는데 하나님이 치유하셨다고 하신다.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떠나지 않았다.
생각하기를 섬기는 일이 많아서 몸이 아프다고.
그래서 섬기는 일을 좀 나누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섬기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데.
버겁다고 생각되어 섬기는 일을 벗어버리려고 했던 나의 생각을 회개했다.
하나님의 은혜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구해야지, "섬기는 게 특권"
교회에서 어떤 집사님을 제4 여전도회 회장으로 세움.
그런데 그 집사님이 신 간사더러 하라고 함.
받아들임.
오이코스와 달리 여전도회는 주방일을 섬겨야 하는데 가장 못하는 게 주방일임.
하루는 주방에서 무를 깎음. 어깨가 아픔.
아파서 꾀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음.
그러나 그 생각을 무시하고 아파도 무를 썰음.
그러자 어깨가 치유됨.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신기함. 하나님은 국제정세까지도 바꾸심.
어떤 갈림길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움직여보라.
눈이 오는 날 가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게 보임.
하나님만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고백함.
단지 고백만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
아들의 등록금을 보내려고 은행에 가서 입금을 시키는데 입금이 안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들에게 전액 장학금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다는 고백만 드렸는데도 이런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만 찾아보라.
그러면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의 장막을 세우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처소를 세우신다.
요 4:24-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의 거처를 삼으신다.
예수님을 통해 연합된 그 관계를 누리게 한다.
다른 사람이 안 세워져도 나만이라도 해라.
같이 가려고 하는데 우선 나부터 세워져야 한다.
내가 더 주님을 찾아라.
하나님은 내가 먼저 생명을 누리는 자리로 인도하신다.
이게 다루심의 자리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역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세상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사역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가운데 오신다.
기도는 안보인다. 그래서 점차 기도를 안하게 된다.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기도한다는 것은 겸손의 표시다.
주님을 찾는 것 외엔 어떤 것도 중요치 않다.
주님을 찾다가 대체물(예: 사역)로 빠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원으로 자기 사역을 함.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
어떤 목적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것에 맞는 게 보인다.
하늘과 땅을 움직여야겠다는 목적을 가지면 방법을 찾게 된다. 이건 아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관계는 하루 이틀 되지 않는다.
방법은 넓은 길, 쉬운 길이다.
관계는 좁은 길, 어려운 길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에게 직접 배워라.
하나님의 길을 보이심은 하나님이 그 길로 오라시는 초청이다.
이때 지속적으로 주님을 찾아야 한다.
이론은 생명이 없다. 실제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찾는 것, 구하는 것만큼 주님이 계시하신다.
다윗의 장막은 하나님이 세우신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나타난 놀라운 역사들을 대하면 방법을 배우려고 하는데 이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야 한다.
하나님의 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이걸 못본다.
원을 뱅뱅 도는 것-진보가 안되고 한 자리에 계속 머뭄.
사역이 짐이 되면 무거워진다.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헌신-우리의 마음이 순전하게 주님께 드려져야. 이게 기초.
영적전쟁-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심. 내가 아니다.
예배-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 얼굴 구하는 것.
사단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사단보다 하나님은 더 강하시다.
이것을 확신해야.
목회자들-열정, 헌신은 있는데 변화는 없다. 왜 그럴까?
미세한 부분이 조정되어져야.
미세한 부분이란 견고한 진이다.
기도할 때, 얘기할 때 답대로 한다.
그런데 실제가 안된다. 왜 그럴까?
하나님: "개 헤엄치지 마라 해라."=수영을 하긴 한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프로는 안된다. 프로가 돼야. 정식으로 배워야 한다.
내 것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도 급하면 다시 개헤엄 나온다.
왜? 편하니까. 익숙하니까.
이게 견고한 진이다.
개헤엄-되긴 하다. 그러니 안 놓으려 함.
예수님과 관계가 멀어지게 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마라.
사단의 미혹이다.
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자원으로 살아야 한다.
그럴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실제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안되면 안된다.
찬양
배운 데로 해라. 단계적으로! / 말씀+성령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성령 성령하면 하나님 놓칠 수 있다.
1. 하나님만 바라보게 함: 문제나 상황(환경)
떨쳐 버리고 하나님만 보게 됨.
2. 찬양을 방법에 따라 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 성공한 방법, 은혜받았던 그때 그 방법.
3. 하나님은 늘 새로운 관계로 하나님 찾길 원하신다.
4. 주님이 각자에게 지시하시는 방법대로 하라.
5. 방법을 알려 주지 마라.
여 목사님은 방법 안 알려주심.
간증: 혼자서 예배의 단계대로 찬양드림. 하나님이 너무 함께 하심.
1-5단계 중 3단계가 걸리면 다시 조정해서 1-5단계를 함.
6. 처음 배울 땐 착한 어린이처럼 배운 데로 해라. 이게 프로가 되는 과정이다.
7. 다윗의 장막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 주신다. 이게 예언이다.
예언
1. 예언은 잘 분별해야 한다. 못하면 부작용. 미혹의 영 때문에.
2. 성령, 성령하면서 말씀을 소홀히 하기 쉽다. 은사-파워가 막강하기 때문.
3. 예언을 보이시면 하나님께 물어라.
5. 자꾸 예언을 나누려고 하지 마라.
6. 교회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사역해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이렇게 예언하라」
교회 안에 먼저 십자가 복음이 세워져야.
예수그리스도의 터가 기초이므로.
1. 예언의 목적-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
2. 예언의 내용-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
생명이심.
그러므로 문제해결이 아니다.
3. 어떤 목적을 위해 예언하느냐.
1)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함.
2) 교회를 세우기 위함.
4. 주의할 점
1) 성령을 멸시치 말라고 했다.
2) 그러나 분별해야 한다.
3) 그럴려면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4)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쫓아가길 원하신다. 예언을 쫓아가길 원치 않으신다.
5) 예언은 확인하는 작업이다.
6) 세 사람이 똑같이 들었을지라도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인되어져야.
사람은 실수한다. 아무리 강한 예언의 은사 갖고 있어도.
7) 하나님은 각자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8) 하나님이 주신 감동만큼만 전해라.
9) 적용과 조정하려 들지 마라.
10) 하나님보다 긍휼이 더 심해서 내가 이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조심해라.
11) 예언에서 진짜는 진단과 처방이다.
가령 암이라고 했을 때 정확하게 진단해야 하는 것처럼 예언하기에 앞서서 상대방에 대한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처방해야 한다. 이게 중요하다.
5. 잘못된 점
1) 예언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다.
2) 예언을 통해 사람을 조정하려 하는 것도 잘못이다.
6. 지녀야할 자세-이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이끌어야 하겠다는 것.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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