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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사데교회를 향한 편지

시리즈설교/소아시아7교회

by 발의무리 2011. 2. 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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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강 사데교회를 향한 편지




계시록 3:1-6절입니다.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교회를 향한 편지를 한 마디로 줄이면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의 다림줄로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 2장에서 네 교회를 살펴보면서 여러 차례가 결쳐 하나님의 다림줄이 나왔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다림줄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다림줄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데교회를 향한 편지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다림줄에 굳건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1.하나님의 다림줄에 합하지 않는 모든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러 차례 보았지만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은 다릅니다. 우리 인간은 외모를 취합니다. 외부적인 실적이나 모양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판단하실 때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다림줄만 가지고 판단하십니다.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사데교회는 1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매우 사역이 활발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1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합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말은 살아있는 명성을 가졌다고 영어성경을 말합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살아있다고 생각했을 뿐아니라 다른 교회들이 보기에도 살아있는 교회라는 명성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지원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활동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 뿐아니라 다른 교회도 그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라고 명성이 자자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너희가 죽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관점이 다를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죽었다고 말씀하시는가입니다. 어떤 때는 기도해줄 때 부정적인 것만 들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분은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잘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죽어있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것이지요.
답변이 2절입니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너는 깨어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잠자는 것을 언제 잠잔다고 생각합니까? 개인적으로 기도도 잘 안하고 신앙생활하는데 주일날 예배도 잘 빠지고 예를 들면 헌금도 드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적으로도 보면 숫자도 많지 않고 활동도 안하고 그런 교회를 잠자는 교회라고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성도들이 침체되지 않게 하려고 정신없이 프로그램을 돌리잖아요. 왜냐하면 한가하면 병든다고 생각하니까 그럽니다. 바쁘게 하면 그래도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침체된 교회를 우리는 잠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이 교회는 자신들 뿐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사데교회를 볼 때 살았다고 명성이 자자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깨라고 하십니다. 잠들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불로 표현하면 불이 활활 타오르다가 불씨만 남은 것입니다. 이것마져 꺼지기 전에 보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불씨라도 살려야 되는 형편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답변이 이것입니다. 네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그들의 사역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전 3장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느냐면 자신은 사도로되 이방인을 위한 사도이고 교회의 터를 닦는 사도라고 말합니다. 자기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닦은 터 위에 다른 사람들이 세워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말합니다.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세워가는데 금 은 보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기준으로 세운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게 세워진 것은 남아있겠지만 이땅에서 아무리 화려해도 불을 지날 때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것은 다 타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신은 예수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 어떤 상급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와 개인의 사역이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 듯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활발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고 활동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기준에 볼 때 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의 다림줄과 영적분별력의 관계

오늘날 두 번째 부분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요.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다림줄에 서지 않으면 절대로 분별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1)영적인 분별력이 아주 필수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큰 교회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설교 가운데 하나의 예화를 들어요. 큰 교회 목사님인데요. 그분이 성도중에 한명을 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분이 서울대 교수였는데 불치의 병으로 누워있었어요. 그런데 그 교수님이 목사님의 손을 붙들면서 목사님 이날에 있을줄 알았다면 제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인데. 아이라고 사람은 죽을 날이 있는 줄 압니다. 안믿는 사람도 압니다. 문제는 그것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서울대 교수였어요. 죽을 날이 있는 줄 몰랐겠어요. 알았지요. 이론으로는 알았지만 우리가 죽을 것이고 죽은 다음에는 주님 앞에 설 것이라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 연수의 날자를 나로알게 해주세요. 내 살아가는 생애가 무한하지않으며 죽을 날이 있음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처럼. 심각한 것이 그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필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 사역을 위해서도 필수입니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필수입니다.
하나는 우리의 사역은 앞서가신 주님을 주시하여 보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죠나단 에드워드가 말한 것처럼 그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그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주시하여 보고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순종하여 동참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시대에 내 삶의 주위에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반대적인 면에서 분별력이 없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해도 모릅니다.
성경을 봅시다. 눅19장 43절입니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여기보면 예수님이 유대나라에 심판이 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40년이 되지 않아서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이렇게 심판이 다가올 것이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권고받는 말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권고받는다는 말은 영어성경에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오는 때를 너희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저들이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방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 심판이 온 것입니다. 왜요?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못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 이야기이지 우리는 예수님을 믿잖아.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동참하는 것 뿐아니라 심판도 볼 수 없습니다.

한 구절 더 봅니다.
렘7:13-15절입니다.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역시 심판에 대해서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심판이 온다고 하십니까? 유대 백성이 그 당시 당연히 그들이 죄를지었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아침부터 너희를 불렀는데 너희가 대답하지 않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늘 말씀드린 대로 그 당시 유대백성들은 얼마나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느냐면 특별한 향료를 사다가 하나님께 드릴만큼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아침부터 너희를 불렀는데 너희가 응답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만큼 열심히 예배했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섬겼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안들었겠어요. 들었겠지요. 그러면 왜 그들이 안들었느냐? 하나님의 행하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그들은 듣지 않았어요.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여러분이 만일 예레미야 시대에 살았다면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간단히 설명하겠어요. 예를 들면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1000명이라면 995명이 거짓 선지자였어요. 그런데 거짓선지자라고 써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는 그 당시 사회에서 훌륭한 선지자로 인정받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에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오늘날 목회에 성공한 목사님들이 거짓 선지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큰 교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동일하게 말씀을 전했는데 평화와 축복을 전했습니다. 반면에 참된 선지자는 5명밖에 안되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예레미야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다녔고 멍에를 매고 다녔어요. 지금 수많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화려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예레미야가 와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와서 그럽니다. 이것이 뭐 하나님의 성전이냐? 하나님이 이곳을 다 쓸어버릴 것이야. 예레미야는 멍에를 매고 다녔고 이사야는 벌거벗고 다녔어요. 에스겔은 토성 싸놓고 옆으로 300일 누워있고 또 다른쪽으로 40일을 누어있어요. 이런 외모를 볼 때 전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 전했던 메시지가 나름대로 성경적인 것을 아세요. 여러분 왜 그들이 예루살렘에 패망안된다고 한 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 나라와 위가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다윗의 자손이 왕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이 나라가 영원하리라고 하셨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입니다. 말씀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당연히 말씀을 가지고 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내 이름을 그곳에 두리라는 성전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예레미야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서 이 나라를 칠 것이라고 했어요. 이 말은 일제시대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일본을 들어서 이 나라를 치신 것은 하나님의 일이야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 것이야 라고 설교한 것과 같습니다. 그 당시에 예레미야가 그렇게 설교하고 있었어요. 이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거기다가 메시지를 보세요. 메시지가 가볍기나 합니까? 이사야 시대에 그렇게 많이 기도하고 헌금하고 예배드리는데 그들을 향해 이 소돔의 백성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성경적인 이유를 들어서 이 나라는 안망한다고 전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패망한다고 하니까 저 미친 놈이라고 했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이름을 이곳 성전에 두시겠다고 했는데 그 성전이 멸망한다고 하니까 또 무슨 개같은 이방나라를 들어서 이곳을 친다는 것이냐 하나님이 다윗의 왕위가 영원하리라고 하셨고 그 왕이 살아있는데. 믿을 리라 없지요. 안믿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는데 한꺼번에 잡혀간 것이고 아니고 세 차례 잡혀갑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고 곧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곧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당시에 살았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순종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대인들이 안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침부터 너희를 불렀는데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을 뿐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때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보셔야 됩니다. 이것이 안보이면 심각한 것입니다.

헨리블랙가비 목사님이 하나님과 신선한 만남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인데 우리가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에서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신다. 그 징계 중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징계하시는데 하나는 악한 자의 압제를 당하게 하시기도 하고 또 하나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게 하고 여러 가지 핍박과 어려운 일들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징계들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도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못봅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그래서 분별력이 중요합니다. 사데교회를 보세요. 자기들 뿐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살아있다는 명성을 가진 교회였지만 예수님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영적인 분별력이 필수인데 영적인 분별력이 하나님의 다림줄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 오늘 읽은 계시록 3장을 다시 보십시오. 사데교회는 본인들은 다른 사람들은 살아있은 교회라고 명성이 자자했는데 실제로는 죽어있다고 예수님은 말합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의 기준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3절을 보면 해결책을 말합니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기준에 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일깨지 않으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겠다고 하시면서 언제 임할른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이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여러번 말씀했습니다. 깨어있으면 돌아가는 징조를 통해서 주님이 오실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징조들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징조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주님이 우리 코 앞에 다가올 때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도적같이 임할 것인데 어느 시에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그만큼 그들이 눈이 어두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것이 이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눈이 멀먼 자기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다 압니다. 문제는 영적으로 눈이 멀면 절대로 자기가 못본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이것이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까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심판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아버지의 방문의 때를 너희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들보다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들도 자기들처럼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못보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왜 못보았는가? 하나님의 다림줄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건 교회건 목회자이건 성도이건 우리에게 분별력이 있으려면 하나님이 비추어주셔야 합니다. 이런 자세가 우리 삶 속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 삶 속에 세워지도록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성경을 보며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면 내 삶을 조정해서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이건 평신도이건 그런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들이 지극히 작습니다.

목회자의 예를 들겠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소망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면 목회자 중에도 심지어 비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저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목회자도 그러는데 일반 성도는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목회자중에도 심지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하나님의 행하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 가운데서 고민하며 애통해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그 가운데 행함으로 찾는 자들이 너무나 드뭅니다. 교회를 어떻게 하느냐?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봅니다. 성도들이 어떤 취향의 예배를 좋아하고 시간은 얼마나 분위기는 실내장식은 장소는 어떠해야하느냐 연구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그 취향을 연구하고 채워줍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래야 교회가 성장하니까 그럽니다. 그 자세로는 절대로 분별력이 열릴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그런 상황이라면 오늘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가운데 행하고자 하는 분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올 때 내가 원하는 복을 받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오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그 자리에 서고자 하는 분들이 적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하나님의 기준만이 굳게 섭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서만 평가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틴 루터 시대에는 면죄부를 팔아서. 전세계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사데교회에 주신 메시지의 심각성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비추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주위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여러분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하나님의 안목이 보이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관점이 보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하나님과 관계는 심각한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영적인 분별력은 하나님의 다림줄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부담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청년들하고 이야기했는데 청년들이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가난하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못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한편으로는 주님을 안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 된다는 것은 내가 가나할지라도 그렇다고 항상 가난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모든 사람을 절대 가난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난할지라도 주와 함께있는 것이 소중합니다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메일로 좐 윔버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을 정리해서 보내줍니다. 온 것을 읽어보니까 그분이 예수믿을 때 일을 써놓았어요. 그분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성경공부 하면서 5시간 공부한다면 5시간 전부터 거기 가서 돌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같아서. 그렇게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몇 달 동안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왔는데 하나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예수님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왔는데 왜 예수님만 이야기하느냐고. 예수님이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침을 받고나서 예수믿고 구원받을 열망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가르치는 분이 거녀 팬이라는 분인데 아직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가르치냐면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보화 이야기있지요. 숨겨진 보화비유있지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직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때 어떤 상태에 있었느냐면 존 윔버 목사님이 라스베가스에서 공연하는 팀에 있었는데 밴드의 한 일원이었습니다. 그 앨범이 미국에서 10대 앨범에 두 개가 들어갈 정도였어요. 대단한 것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데 미국 시장규모로 볼 때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그 가르침을 받고 있었어요. 이분이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존 윔버가 그러면 내가 직장을 버려야 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내고 묻지요. 그러나 가르치는 분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합니다. 아무리 두고 봐도 포함되는 것이 분명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윔버는 어려서 아버지가 버리고 떠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외가집에 맡겨두었어요. 와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악기만 가지고 살았어요. 19가지나 다루었는데 한 악기마다 프로급으로 연주할 수 있었어요. 전문 사역자들이 다룰 만큼 프로급으로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고 살 수 없지요. 그래서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이 그를 다루어 가십니다. 그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분이 어떻게 했느냐면 어떤 경로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는지 말하지는 않지만 그 악기들을 파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다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돈으로 따져도 얼청난 가치가 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악기 책 자료들을 트럭에 실고 쓰레기 통에 버렸습니다. 누가 횡재를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버리고 따랐다면 잘되었느냐? 아닙니다. 해먹고 살 것이 있어야지요. 지금까지 애써서 왔는데 손가락에 투자했는데 이제 가서 막노동을 하려니 일이 되어야지요.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 4개월동안 가정에 극심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름통을 닦는 일을 했어요. 최소임금을 받고. 그러는 중에 라스베가스에서 사람이 왔어요. 여기 윔버씨 있느냐고. 계약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하자 예수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미친 사람인 줄 알고 혀를 차며 가버렸답니다.

그분이 한 말이 그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가 그것이랍니다. 너의 모든 것으로 나를 사라. 그러면서 주님이 그렇게 사면 훌륭한 미래라든가 잘사는 미래를 약속한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사면 나를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만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전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의 워십은 그분의 워십팀을 통해서 세상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 자세가 있어야 영적 분별력이 열립니다. 그런데 신앙이 아니라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합니다. 그러니 무슨 영적인 분별력이 있겠어요.


사데교회 사람들이 보기에 살아있는 교회처럼 보였으나 주님이 보기에 죽었습니다. 불씨 조금 남은 것 그거라도 살려라 깨어라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9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심판하러 왔다고 하시면서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더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보지 못함을 아는 자들이 애통하며 구할 때 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말로 전하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다림줄과 7중 성령입니다. 사데교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일곱 영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칠중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한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전능하신 분이시고 전지하신 분이시며 의미가 다릅니다. 위로의 하나님이고 하듯이. 성령님도 이런 의미로 칠중 성령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데교회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세워질 때 거기에 칠중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는 학개서와 스가랴 4장을 읽으라고 감동을 주셨어요. 하루는 왜 보게 하셨는지 선명하게 보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포도나무 교회를 통해서 새물결선교회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는가가 선명하게 비추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예언이 두 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 성령으로 친히 성전삼고 거하실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이론적으로가 아닌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고 영광으로 통치하실 교회를.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더. 그때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실텐데 평강이 있을 것이고 열국의 부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 일은 칠중 성령님의 역사만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이번 9차 집회만 해도 그렇습니다.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다림줄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과 교회의 모든 사역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이 서야 합니다. 우리는 실적 위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냐에 관심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가 관심입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못번다면 하나님의 기준은 달라집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교회성장에 있어서도 교회도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면 좋은데 교회 성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둘째입니다. 이런 타락한 우리 가운데 무슨 분별력이 있고 임재가 있겠어요. 회복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세워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내 개인 교회가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기준을 다림줄을 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주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스가랴 4장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칭찬하면 하나님은 칭찬을 못받게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 것이 없거든요.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 뿐이거든요. 하나님이 하신 것 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요 그럽니다.

세례요한을 보세요. 사람들이 네가 메시야냐고 물을 때도 자기가 메시야가 아닌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한 개인을 소중하게 여기고 내세우고 한 교회를 내세우고 새물결선교회를 내세우고 포도나무교회에 속해있기 때문에 여주봉 목사님을 내세우고 그래가지고는 절대로 못갑니다. 영광을 받으실 분이 있다면 그분 뿐입니다. 언어와 행실에서 주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주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주님만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안에서 우리가 연합되어야 합니다. 스가랴 4장 6절과 요한복음 14장 12절의 약속을 기억하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려면 철저하게 다림줄 가운데 서야 하고 예수님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말과 행실에서 철저하게. 여러분에게 어떤 은사가 나타나도 여러분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와 나라를 위해 주신 것 뿐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사데교회의 교훈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세워져야 합니다. 포도나무 교회가 이런 일에 지속적으로 머물려면 사데교회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다림줄에 서고 주님만을 높이는 데 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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