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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버가모 교회를 향한 편지

시리즈설교/소아시아7교회

by 발의무리 2011. 2. 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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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강 버가모 교회를 향한 편지



계시록 2장 12-17절입니다.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는 소아시아지역에 있던 한 도시입니다. 특별히 로마제국 중에서 아시아 지역의 수도가 버가모지역에 있었습니다. 버가모 지역도 우상숭배와 이방종교로 가득했습니다. 200미터 정도의 산이 앞에 있었는데 그 위에 온갖 종류의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단의 위라는 말을 해석하기를 시온산이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했던 것처럼 버가모 앞에 있는 산이 마치 영적인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단의 보좌라고 해석합니다. 그만큼 신전으로 가득했습니다. 로마황제에게 봉헌된 신전이 아시아지역에서 최초로 있었던 지역입니다. 황제숭배의 발단이 버가모 지역에서 있었던 것을 역사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지역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많은 핍박과 불이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신앙생활하는 버가모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편지에서 우리 신앙이 얼마나 영적전쟁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팎으로 영적전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영적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볼 것입니다.


1.우리 신앙은 안팎으로 영적전쟁입니다.

우리 모든 시대의 우리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순간에 영적전쟁의 최전방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백마고지를 점령하고 확보하기 위해서 수많은 아군과 적군이 죽어갔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영적전쟁에 있어서 최전방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영적전쟁이라는 개념조차 싫어합니다. 그들은 군사로보다 민간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들중에 많은 분들은 영적전쟁 영적전투 그러면 성경에나 나오는 이야기이고 혹은 신앙생활을 하더라고 극단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나 경험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전쟁은 모든 성도가 날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전쟁을 부인하면 무엇과 똑같으냐면. 매가 공중에 뜨면 꿩이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습니다. 자신이 고개를 쳐박았으니 매가 안보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기 눈에 안보인다고 매가 없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영적전쟁을 부인하는 것은 마치 꿩이 고개를 매를 안보려고 땅에 쳐박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만 적에게 노출될 뿐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많은 성도들이 우리에게는 사단보다 훨씬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데도 영적전쟁을 무시할 뿐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권세를 가지고 사단의 권세를 대적하기 보다는 영적전투를 무시하고 회피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영적전투만 해도 큰 주제입니다. 이것만 해도 여러 주에 걸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버가모 교회에 보내진 편지를 보고 어떻게 교회 안팎에서 전투가 일어나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2.교회 외부에서의 영적전쟁

교회 외부에서 영적전쟁중 하나는 주로 핍박과 환란을 통해서 옵니다. 본문에 보면 그 당시 버가모 교회가 많은 핍박과 환란을 당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안디바라는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보면 안디바라는 한 사람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황제숭배가 선전되면서 정부차원에서 대규모적으로 핍박이 일어날 때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한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황제숭배와 관련해서 핍박이 있었고 기독교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고 가 과정에서 안비다라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처럼 핍박과 환란이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핍박과 환란 배후에는 항상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도 사단의 위 사단의 보좌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10장 28절입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핍박하는 자들이며 배후에 있는 사단을 말합니다. 핍박 뒤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외부에서의 전쟁의 주된 부분은 핍박과 환란을 통해서 옵니다.


여기서 이기는 길은 믿음입니다. 지난주에 서머나 교회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예수믿는 삶의 한 부분은 주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삶 자체에 환란과 핍박이 있을 것인데 끝까지 붙잡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환란과 핍박을 이기는 것이 믿음임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영적전쟁에 대해서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보면 여자는 교회를 말합니다. 마리아가 아니라. 아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용은 사단을 말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될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얼마나 사단이 대적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사단의 교회를 향한 핍박을 볼 수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교회를 삼킬 것 같은. 이처럼 당시 로마나 어떤 종교적인 힘은 교회를 향해 교회가 그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무력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뒤에 사단이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하고 지킵니다. 나중에 보면 물을 뿜어서 여자를 죽이려고 할 때 땅이 갈라져 물을 흡수함으로 보호하지요. 이처럼 사단이 교회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이런 사단의 역사를 이기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지요. 그러나 성도편에서는 믿음입니다. 계12장 11절을 보면 승리의 비결이 나옵니다.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여기보면 사단을 고소하는 자 참소하는 자 미혹하는 자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사단을 삼키는 영으로 말합니다. 사단의 참소에는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이기는 것이고 미혹하는 것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증거를 통해서 이기는 것이고 사단의 대적에는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믿음을 통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즉 죽을지라도 주님을 포기하지 않고 붙드는 믿음으로 이긴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교회를 공격하는데 핍박과 환란을 통해서 공격합니다. 외부에서 공격하는 것 중 하나는 핍박과 환란을 통해서 공격합니다. 환경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때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자세가 무엇이냐? 11절처럼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의 공격은 많은 경우에 허풍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세로 순종해 가면 이깁니다. 또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그러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믑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으로 따라가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천로역정에서 존 번연이라는 분이 자기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비추심, 죄됨을 비추셨는데 18개월동안 차라리 사람이 아니라 새로 태어났다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러면서 주님의 용서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는데 성경을 읽고 또 읽고해서 깨달은 진리를 책으로 썼는데 그것이 천로역정이라는 책입니다. 고전 중에 고전입니다. 거기에 보면 기독도가 천성길을 가는데 사자 두 마리를 봅니다. 두려워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라고 합니다. 그 사자는 묶여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사자는 입을 별려서 우르렁 대지만 그 사이에 지나가는데 자세하게 보니 묶여있어요. 그래서 그 길을 통해서 천성길로 갑니다.

이것을 통해서 영적전쟁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단은 사자처럼 우르렁대지만 많은 경우 묶여있습니다. 하나님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죽으면 죽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가면 감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 세브더라는 목사님 우리나라에도 몇 번 오셨는데 세계적으로 귀하게 쓰임받는 분입니다. 그분이 아이를 낳았는데 미숙아로 낳았고 살 소망이 없다고 말했어요. 의사가. 그런데 집회가 잡혀있어서 그런 아내와 아이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도저히 허락하지가 않습니다. 아이는 살 확률이 없고 의사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그 아내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때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이 여기 있는다고 해서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당신은 가서 집회를 인도하세요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아이와 아내를 하나님께로 맡기고 아프리카고 갑니다. 그리고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그 아이를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엡6장을 보면 원수의 화전, 화전은 화살 끝에 불이 달린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미사일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한번 박히면 꺼지지 않고 집을 태우고 사람을 태우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이것을 영적전쟁에 비유하면서 이것을 막는 방패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 굳게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 중에 한 부류는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적으니까 씨앗이 금방 싹이 틉니다. 그런데 태양이 뜨거우니까 금방 말라버립니다. 예수님이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격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환란이 닥치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돌밭에 떨어진 씨라고 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집회에서 어떤 분들은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잘 못했구나 이제부터 잘 살아야지 하지만 돌아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고 하니까 어려움이 닥칩니다. 환란이 닥칩니다. 교회적으로도 이렇게 살려면 사람들이 떠납니다. 환란이 옵니다. 그래도 교회가 부흥해야 예산도 늘어나고 월세도 내고 그렇지요. 오히려 반대가 됩니다. 그러니까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옛날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 중심을 보기 위해서 어려움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망할 것 같고 아무 것도 안될 것 같이 느껴지면 우리는 다시 옛날 자리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떠나 우리 생각으로 돌아갑니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 중 하나가 핍박과 환란인데 이기는 길은 믿음입니다. 여기 보면 저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내적인 전쟁

교회 밖의 전쟁보다 교회 내적인 전쟁이 더 어렵습니다. 여기 보면 버가모 교회는 외적으로는 이겼습니다. 핍박 가운데서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환란 가운데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는 사람이 죽을 정도라면 그 당시 소아시아 교회는 예수믿는다고 재산을 몰수 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았어요. 학교도 아이들이 못다녔어요. 예수믿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여러 어려움이 있었어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예수믿는다고 재산을 빼앗기도 아이들이 학교를 못다니고 장사를 못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겠어요. 서머나 교회가 왜 가난한 교회였을까요? 가난할 수 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런 불이익을 당하니까요. 저들이 부자가 될 수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으로 붙들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을 붙들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붙들었어요. 얼만 귀합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핍박이 없어서 그렇지 핍박이 있었다면 얼마나 주님을 붙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외적인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전쟁에서는 실패했습니다. 내부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는 것을 허락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외적인 전쟁에서 믿음을 붙잡고 승리한 것을 칭한 다음에 주님은 너희에게 책망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책망합니다. 내부에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을 지적합니다. 여기 보면 니골라당이 나옵니다. 발람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세벨이 나옵니다. 이런 가르침을 저들이 용납했다고 말하면서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과 싸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 외적인 영적전쟁보다 교회 내부의 영적인 전쟁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반전쟁에서도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도 내적인 전쟁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전쟁도 다양한 형태를 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발람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어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성도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유혹했고 음란의 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기초가 되고 토대가 되는 가치관은 이세벨의 영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띕니다. 내적인 전쟁에서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의 다림줄입니다. 여러분 여기 예수님이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좌우에 날선 검은 입에서 나옵니다. 계1장에 나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은 날이 양쪽으로 되어 있는 검입니다. 긴 칼을 가리킵니다. 성경에 보면 검이 두 종류가 나오지요. 하나는 단도와 같은 검이고 하나는 장 검이 있습니다. 특별히 입에서 그 검이 나옵니다.

여기서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왜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이 나타나실까요? 외적으로는 승리하고 내적으로는 실패한 버가모 교회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내부적인 영적 전쟁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하나님의 다림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부적인 영적전쟁에서 하나님의 다림줄이 어떻게 중요합니까? 세 가지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왜 사람들이 영적전쟁에서 지는가? 하나님의 기준 다림줄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미혹된 이유는 하나님의 기준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길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럽니다. 버가모 교회 뿐아니라 신약성경을 살펴보면 사도바울이 세운 거의 모든 교회에 그 교회 가운데 사단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형태는 여러 가지였지만 율법주의 등 갈라디아교회 골로새서 교회 등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교회들을 보면 이세벨의 영을 통한 사단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세벨의 영에 대해서는 앞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율법주의와 이세벨의 영은 대조적입니다. 율법주의는 성령의 역사를 철저하게 대적하며 이세벨의 영은 성령의 역사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초대교회에 율법주의건 이세벨의 영이건 혹은 다른 모양으로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주된 원인이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교회도 심각합니다. 우리가 외부에서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려져 있어서 내적으로는 승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이해와 행실들이 들어와 율법주의 이세벨의 영 기타 다른 모습으로 들어와 철저하게 실패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어떻게 관련되는가?
둘째, 내적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다림줄에 서는 것입니다.
CAI 집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해주었어요. 저는 그 당시 교회가 오금동에 있었는데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은 말씀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가 손에 칼을 들고 있는데 이쪽으로 휘두르면 귀신의 세력들이 무너지고 저쪽으로 휘두르면 이쪽의 귀신들이 우르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온 세력을 동원해서 저를 죽이려고 했데요. 그리고 하나님이 온 하늘을 동원해서 나를 막으셨다고 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어요.

오늘날 교회들이건 개인이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되려면 이런 거짓된 것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림줄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져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거짓된 이해들이 끊어지고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중에 있는 감동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처럼 거짓된 것들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교회가 개인이 서려고 할 때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간질을 시키고 그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준에 서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서면 사단의 세력들이 무너지고 성도들과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됩니다. 내부적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길도 기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 보아도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의식 잘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다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기준이 철저하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때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기준도 하나님의 다림줄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심판을 말합니다. 나중에 보면, 버가모교회를 향한 편지를 보면 니골라당을 말씀하면서 16절에서 회개하라고 합니다. 발람의 교훈을 붙든 사람은 소수였지만 교회 전체가 회개하라고 합니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검으로 싸운다고 하는데 이것은 심판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계19장을 보아도 심판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입의 말씀으로 저들을 치리라는 말씀이 두 구절이 나옵니다.
15절입니다.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21절입니다.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여기보면 심판입니다. 입의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은 고전 11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성찬식을 멸시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요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이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약하며 병들며 죽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약하고 병들며 죽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전혀 몰랐습니다. 교회 가운에 있는 죄 때문임을 몰랐습니다.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대충넘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징계이든지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함부로 넘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징계인지 움직이심인지 주시하여 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지방회 같은데 보면 많은 목사님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일이 있다면 그럴 경우 요즘 암이 많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단순하게 넘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돌아보며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로 온 것이라면 회개해야 합니다.

미국의 한 교회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려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운데 유산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있을 수 있는데 한두건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갑자기 그럽니다. 뿐만아니라 학생 하나가 밤에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하나님이 한 분을 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들추어내셨는데 큰 교회여서 목회자가 많았는데 그중 한 분이 성적으로 범죄하고 있었어요. 숨겨진 죄악이었습니다. 교회내에서. 하나님이 들추어내셨고 징계하고 회개했더니 금방 유산이 일어나는 일들이 그쳤습니다. 은혜를 다시 회복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주시하여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임하여 내 입의 말로 치리라는 말은 심판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다림줄로 심판하십니다.
아모스 7장 7-8절입니다.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아모스 선지자에게 하루는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들고 계십니다. 곧바로 세워진 벽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다림줄을 가지고 내 백성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대로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다림줄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림줄로 다루십니다.

여기 버가모 교회만 보더라도 그토록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붙들고 승리했습니다. 잘한 교회입니다. 이렇게 헌신적인 교회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헌신적인 교회인데. 그런데 예수님은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동시에 책망하십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을 허락했다. 빨리 돌이켜라 회개하지 않으면 내 입의 검으로 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를 보세요. 오늘날 한국에 에베소교회가 존재한다면 제일 좋은 교회로 소문날 것입니다. 그런데 첫사랑에서 떠났다고 하시면서 돌이키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다림줄을 가지고 심판하십니다. 지금도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도.

오늘 저는 영적전쟁에 있어서 내적으로 일어나는 외적으로 일어나는 부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직면한 영적전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주님 따라가는 길은 전쟁입니다. 외적인 전쟁은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다림줄에 근거해서 십자가 복음 위에 세워지려면 많은 핍박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단이 역사합니다. 말을 통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합니다. 교회가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잇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만을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고 나가면 그 교회는 개인은 승리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적인 전쟁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다림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늘 겸손하게 엎드리고 하나님의 길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다림줄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림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내 삶에 하나님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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