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으로 사는 삶(2) 열매 맺는 삶 요15:1-8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특징 1.하나님 자원 오직은혜, 믿음, 십자가에 의한 삶 2.하나님 목적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삶 우리가 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골1:16)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셨습니다(엡1:6,12,14). 우리의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 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이요, 이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말씀하신대로 이루실 것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온 삶으로 동참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 크기의 일을 이루시고 이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모세 ->출14:17-18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이라 하시더니” 여호수아 ->수4: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어떻게 하나님의 의중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하나님의 의중을 알 수 있고 이때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이 가능하게 됩니다. 오늘은 요15장을 중심으로 ‘열매 맺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론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열매 맺는 삶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우리로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요16: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삶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구절은 요15장입니다. 1.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우리의 임으로 맺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열매 맺는 삶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성경이 말하는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우리의 임으로 맺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이 사실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최선을 다해 그 은혜의 빚을 갚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 김치찌개, 하나님 김치찌개 좋아한 줄 알고 평생 모든 재산을 다 드려 온갖 종류의 김치찌개를 하나님께 끊여드렸다고 가정, 그런데 막상 하나님 앞에 가보니 하나님은 전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그의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저 우리의 임의대로 우리의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경이 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 엘리야 엘리야에게 아합 왕에게 가서 그의 우상숭배와 죄로 인하여 수년 동안 그 나라에 비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목숨을 건일이 었지만 엘리야는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있는 직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사르밧에 있는 과부 집에 가소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번에도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런데 만약 엘리야가 아! 이제가 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시작했구나 생각하고 조금 전 아합왕 앞에 나아갈 때 그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며 회개를 촉구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했더라면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신앙생활이 매우 훌륭하게 보이고 그가 놀라운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상급이 똑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이후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아합왕과 바알선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사 하늘에서 불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 있어서는 그를 잡아 죽이려고 3년 동안 온 나라를 샅샅이 뒤진 아합왕 앞에 다시 목숨을 걸고 나간 일이나,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린 일이나, 혹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3년 이상 동안 사르밧 과부 집에 숨어 있던 일이나 그 상급이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하셨고 엘리야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에 순종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열매를 사람의 눈에 보이는 외부적인 모양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크고 많게 보이는 것을 큰 열매로 평가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소위 우리교회에 몇 명이 모이고, 예산이 얼마이고, 교회 건물이 얼마나 큰지를 내세우며 그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사람들의 눈에 가시적인 일을 성취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우리가 스스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부분과 우리의 구분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 엘리야 갈멜산 사건 여기서 엘리야가 취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아합왕과 이방선지자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곳에 모아놓고 기도한 것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을 부분도 바로 그 부분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나머지는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칭찬 받으실 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시지 그 어는 누구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상급은 똑 같습니다. 고전9:16-18절을 보면 더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 이로라 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이 말은 바울이 그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한 기름부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임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에 대한 상급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복음을 전할 지라도 그로 인하여 자기에게 상급이 없으며 오히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국 위에 선지자로 세우려고 하셨을 때 그는 매우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나이도 어리고 또 말도 잘하지 못한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다른 것 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는 말씀만 전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렘1:4-10)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머지않아 예레미야는 실망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들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씀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싫어하고 따돌리고 배척했습니다. 그러한 상태는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예레미야는 참다못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속였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하면서 다시는 입을 열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렘20:7-9)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렇게 마음먹었을 때 하나님의 불이 그의 입이나 가슴 속에서 조금 정도가 아니라 그의 뼛속에서부터 타올라 그는 입을 열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기름부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이런 진리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면 오늘날 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목회 현장에서 교인수가 많고, 교회의 큰 건물을 짓고 아무리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다 할지라도, 또 설교를 잘한다 할지라도 거기에서 그가 취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목회가자 취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순종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일들이 마치 자기가 잘해서 일어난 것처럼 생각한다면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는 엄청난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벌어 엄청난 헌금, 놀라운 성격적인 지식과 영감으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찬양할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놀라운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 성도가 취할 것이 있다면 그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여 순종한 부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일들이 마치 자기가 잘해서 일어난 것처럼 생각한다면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는 엄청난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열매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경이 말하는 열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며,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열매 맺는 삶이 필수적인데 그러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과연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요15장에 나오는 열매가 성령의 열매라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도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말들이 부분적으로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근본적으로 그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무엇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매우 간단합니다. 사과사무에서는 사과가 열리고, 배나무에서는 배가 열립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예수님이고 우리는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가지인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고 그 분의 일을 행하시는 바로 그 분의 열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순종하고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께 민감하여 순종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고 자신의 뜻을 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 -> 모세) 3.예수님의 본보기 예수님께서 사셨던 열매 맺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이 요5:19-20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여기서 예수님의 삶에 대한 두 가지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아무것도 임으로 행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고,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둘째는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는 것만 그대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께 민감하셔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예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 4.열매 맺는 삶의 중요성 1)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지금까지 성경에서 말하는 열매가 무엇이고, 열매 맺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매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열매 맺는 삶이 하나님의 동력자의 삶이요, 예수님의 지체로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기 위해 바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이 구원받게 된 계기는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막 지방에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밝은 그 분의 영광으로 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심으로서 마련되었습니다.(행9장) 그러나 막상 바울이 구원을 받고, 주님의 그 밝은 영광의 빛으로 인하여 어두워진 눈을 치유 받고 또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것은 아나니아라는 다메섹에 살던 한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신비요 사랑이며, 또한 주님의 방법이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영광으로 직접 그에게 나타나시고 또 그에게 직접 말씀하실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그 분께서 직접 그를 구원하시고, 치유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나아갔을 때에도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단지 바울에게 나아가 조용히 손을 얹고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라고 가도했을 따름이었습니다.(행9:17)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모든 일들을 자신이 하지 아니하시고 아나니아를 그에게 보내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게 하셨고,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울에게 나아가 가도할 때 예수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신 것입니다. 만약 아나니아가 순종하지 않았다면 바울은 그 당시 치유 받지도 성령으로 충만케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님의 길이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지체로서 혹은 주님의 동역자로서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열매 맺지 못한 삶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는 ‘예수님은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다 그래서 나 같은 것이 없이도 능력의 주님이신 그 분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삶이 바로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이요, 이러한 삶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성경의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이 종 은 이렇게 주인께 말합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마25:24)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주님 당신은 강하신 능력의 주님입니다. 그래서 제가 뿌리지 않아도 당신께서는 능히 거두실 수 있고, 내가 추수하지 않아도 능히 모으실 줄로 알았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방법을 올바로 알지 못했고, 따라서 그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써 그 분으로 하여금 역사하실 수 있는 기회를 그 분에게 드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주님으로부터 열매 맺지 못한 삶에 대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수님은 그 열매 맺지 못한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서 예수님이 주셨던 그 한 달란트를 빼앗고 그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요15:2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은 가지인 성도들이 열매 맺는 삶을 살지 못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적으로 고갈 되며, 그 결과 사람들로부터도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은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성도들을 크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요15:2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하고, 또 예수님의 제자된 삶을 살기 원할 진데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에게도 기쁨과 평강이 넘치고 우리 주님의 생명과 능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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