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4:33
성경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피조물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합니다.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지음 받았으며 이 때 진정한 생명이 있다는 겁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거할 때 그곳에는 모든 풍요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계획하며 살고자 하였을 때 그에게는 모든 궁핍이 찾아오게 되었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요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때 진정한 요10:10절의 생명의 풍성함이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양이 목자를 주인으로 모시고 목자의 인도를 온전히 받을 때 생명의 풍성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란? 하나님 자원, 하나님 목적, 하나님 방법으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자원으로 사는 삶이란? 오직은혜, 오직믿음, 십자가에 의한 삶을 말합니다.
예, 오직은혜에 의한 삶(청소)
은혜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고 서야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 두 번째가 하나님 목적으로 사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목적으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목적이 곧 나의 목적으로 삶고 그 일을 동참하는 삶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니 하나님이 목적을 세우셨으면 하나님 혼자 하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들 통하여 그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 -더치 쉬츠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고 하심.
천지창조 -> 아담에서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음, 하나님을 대신해서 경작케하시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고, 통치자로 삼으심,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부과한 권위가 얼마나 큰지 이 권세를 아담이 다른데(사탄) 넘겨줄 수 있을 만큼이라고 함.
눅4:5-6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아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리라”
예) 기업의 회장이 한 사람에게 회사를 다스릴 권위를 부여함, 그런데 이 권위가 얼마나 큰지 이 사람이 이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을 만큼의 권위라는 겁니다.
모세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홍해 앞에 도착함.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 -> 이것은 누구의 능력으로 한 것입니까? 모세? 아님 하나님? 그렇습니다. 전적(100%)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는데 모세가 더한 것은 조금도 없음.
전적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람을 불게 하셔서 물 벽을 세우시고, 땅을 마르게 하심.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일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홍해바다 위로 손을 내 밀었다고 홍해가 갈라지는데 조금도 더한 것이 없습니다. 손에서 장풍이 나온 것도, 바켓츠로 바닷물을 퍼낸 것도 아님.
그런데 모세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홍해는 갈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다보니 인간의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음.
그렇다면 모세를 훈련시킬 필요가 없었음, 그냥 하나님이 단독으로 하시면 되니깐...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심.
모세가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라고 말하고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민 것은 대단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홍해 앞에서 단독적으로 했다면 -> 홍해는 갈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것을 행하시려 할 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명령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함. 만약 동참하지 않으면 -> 안 이루어짐
엘리야의 중보기도
아합의 범죄 -> 엘리야를 통해 아합왕이게 말하라 3년6개월 동안 비가오지 않으리라, 그리고 사렙다 과부의 집에 숨어 지냄.
왕상18:1 -갈멜산 엘리야의 기도응답 후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 처단.
그다음 왕에서 빨리 내려가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엘리야에게 이미 비의 소리를 듣게 하심,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겠다고 하심.
우리생각에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겠다 하면 다되었다고 생각함.
그런데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 머리를 무릎사이에(당시여인의 해산의 모습) 넣고 기도함, 7번, 7번째 종에게 가서 보라할 때 손바닦만한 구름이 보인다고함, 내려감.-> 큰비
이것을 야고보기자는
약5:17에서
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아니 오고
18-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비를 내리시겠다 하셨지만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해서 비를 내리셨음. 만약 엘리야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비 안 내리셨을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것이 동역자의 삶.
그렇다고 엘리야가 임의로 기도했다면 비를 내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겠다할 때 기도함으로 비를 내리심.
기도하지 않으면 -> 비 내리지 않음.
이제 보이시나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해 가실 때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목적으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 크기의 이루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 목적으로 사는 삶인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중을 보이실 때 우리가 순종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선?
1)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반드실 이루실 하나님.
금요일저녁 광주서 내려오는데 비로인해 운전하기 힘듦 ->기도
2)내 삶을 조정하는 것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믿음 -> 행동
행동 = 조정 + 순종
하나님의 계시는 당신의 인생을 그 분께로 조정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과 그분의 목적과 방법에 당신의 인생을 조정하고 나면 당신은 순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조정은 순종할 수 있도록 당신을 준비시킵니다. 여러분은 평상시대로 삶을 영위하거나 당신이 있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노아는 평상시대로 삶을 영위하면서 동시에 방주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창6)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나 하란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가나안에서 한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습니다.(창12:1-8)
*다윗은 왕이 되기 위해서 그가 기르던 양떼를 떠나야만 했습니다.(삼상16;1-8)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외치기 위해서 뽕나무를 두고 떠나야만 했습니다.(암7:14-15)
*요나는 니느웨이에서 외치기 위해서 그의 집과 편견을 버려야만 했습니다.(욘1:1-2, 3:1-2, 4:1-11)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고기잡이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마4:18-22)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세관을 떠나야 했습니다.(마9:9)
*사울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쓰임받기 위해서 그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완전히 바꾸어야 했습니다.(행9:1-19)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먼저 획기적인 조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과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편견을 버리고 선호하던 것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삶의 목표와 추구하는 이상과 소원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온 인생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필수적인 조정이 완성됐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그 분의 목적을 성취해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그들의 인생을 조정하는 것이 그들이 지불한 대가보다 훨씬 더 값진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목적으로 사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조정의 단계를 거처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데 필수적 모든 조정을 할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조정의 단계 없이 순종으로 나아갈 수 는 절대 없습니다.
엘리사와 부자 청년은 모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초청을 받았습니다.
부자청년(눅18:18-27)
부자청년이 영생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의 신이 되어버린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자청년은 주님을 따르는데 필요한 조정을 하기를 거부하였고, 따라서 영생을 경험하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요17:3 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는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를 원했지만 참 하나님께로 그의 인생을 조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반면 엘리사는 아주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서 가족과 직업(농사)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농기구를 불태우고 24마리의 소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2마리의 소를 잡아 요리해서 온 동네 사람을 먹였습니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조정을 했을 때에야 비로소 순종하는 단계에 온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구약에 기록된 것 중 가장 위대한 기사와 기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왕하2-13장) 엘리사는 부르심을 받은 초기에 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조정을 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기적을 베푸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 목적을 위한 삶으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고
조정하고
순종의 자리로 초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조정을 단계를 거쳐야합니다.
하나님의 자원으로 살려면 내 자원이 내리는 이 조정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내 자원을 내리는 조정이 없이 하나님의 자원으로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내 주위에 소음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목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내 목적(뜻)이 내려져야 합니다.
조정의 종류
환경(직장, 가정, 물질)
인간관계(가족, 친척, 친구, 사업상 거래인)
생각에서(편견, 방법, 당신의 가능성)
헌신도에서(가족, 교회, 직장, 계획, 전통)
행동에서(어떻게 행동하는지, 주는지, 섬기는지)
믿음에서(하나님에 관하여, 그분의 목적과 길들에 대하여, 그분에 대한 우리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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