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주낮)
하나님 방법으로 사는 삶
아모스7:7
우리 신앙은 모든 면에서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다림줄(기준)에 맞추어 세워져야합니다.
1.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진 교회
이것을 하나님께서 암7:7-8절에서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7-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7절에 나오는 담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림줄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진 담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세워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그들을 심판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다림줄(기준)을 가지고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가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신30: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렘7: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수22: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특히 여호수아 22장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치고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요단 동편으로 보내면서 그들을 향한 모든 신앙의 권면을 이 한 마디 속에 담아서 그들에게 당부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는 모세가 신명기 3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요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그것이 그날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여 있던 그 많은 환자들 중38년 된 병자 한 사람만 고치신 것과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슷한 종류의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도 각기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유를 위해 어떤 방법을 의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다 헛것.
계3:1-2
사대교회 - 사람의 평가 ->살았다, 하나님의 평가 ->죽었다
서머나 교회 - 사람의 평가 -> 가난한 교회, 하나님의 평가 ->부요하다
라오디게아교회 - 사람의 평가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의 평가 ->가난, 가련, 헐 벗고 굶주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관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야 바른 신앙생활인 하나님의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관점은 엄청 소중히 여기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관심밖에 있음.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볼까 에는 엄청 신경을 쓰면서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보실까 고민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모습입니다.
사람 앞에 잘 보이는 것에 대하여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전혀 관심밖에 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관점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잘 봐주시겠지 당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 대하여서도 ‘너희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가는 소중히 여기지 않고 서로 칭찬만 원한다’고 말씀하심.
요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런데 바리새인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십니까? 아님 사람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시나요? 뭐라고 대답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긴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심, 왜? 실제는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김보다 사람의 평가를 소중히 여김.
오늘 우리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실로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똑같음.
사대교회 - 잘나가는 교회였음, 활동력이 강하고,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침체되어있는 교회가 아님, 자타다가 공인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는 교회였음. 그런데 주님의 평가는 실상은 죽었다 ->관점이 달라요.
그럼 왜 죽었는가? 예수님의 처방이 무엇인가?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즉 받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순종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고전3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3:10-15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울 때 하나님의 기준은 금, 은, 보석으로 세우는 것인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구원은 받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는 겁니다. 즉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이 볼 때 아무리 화려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함께하니 성장하지 하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들의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에베소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사람들이 볼 때는 훌륭한 교회였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렘6:20
예레미야 시대 -시대말적인 상황
예레미야 40년 사역,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북쪽에서부터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 바벨론이 쳐들어올 것을 예언, 그 예언대로 되고 있음을 목도함.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를 보세요.
유대 -> 시바, 에티오피아 2,000키로 정도
원방 -인도
이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이들이 자기들이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는다고 생각했을까요? 안받는다고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받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비싼 향유를 드렸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를 안받는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심판을 예고하고 있는 거예요. 왜? 예배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우리의 그 어떤 희생, 헌신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3.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는 길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는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잘 한 사람 중 하나가 다윗입니다. 그는 매사에 자기의 판단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구하여 물었습니다.
삼상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삼하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삼하5: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23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사무엘상 30장에 나옵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피신해 있을 때 당시 블레셋의 족장들과 합하여 사울을 치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다른 족장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냥 자기가 머물던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글락에 돌아오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 동안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범하여 모든 집들을 다 불태우고 자기들의 자녀들과 아내들을 포로로 잡아가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삼상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8-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만약 하나님께서 쫓아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참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처럼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다윗도 하나님께 묻지 않아서 큰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 성으로 가져올 때였습니다.
역대상13장에 보면 그는 언약궤를 가져오게 위해 새로운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그 위에 싣고 나르게 했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 춤추며 온갖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소들이 뛰는 바람에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려고 했습니다.
이를 본 웃사라는 다윗의 부하가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만졌다고 해서 그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모든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다윗은 심히 분을 내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기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수레에다 나르는 것이 아니라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나르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가장 근본적인 잘못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것에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대상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우리의 참다운 신앙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자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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