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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회복(1) 신앙의 본질과 예배

시리즈설교/예배회복의삶

by 발의무리 2006. 11. 9. 09:55

본문

예배 회복(1) 신앙의 본질과 예배

호6:1-6


핵심

예배가 회복되어야 모든 신앙생활이 회복된다.

우리의 예배의 문제점 - 형식적 - 하나님이 받지 않으심

예배란?

1.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

따라서 우리의 예배에는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신앙의 본질이 엇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율법주의에서 다룸)

2.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님,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오는 것이 예배 - 즉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 뜻 발견, 성령의 운행

3.신앙의 본질이 없는 예배는 헛된 예배

4.신앙의 본질이 없는 예배의 특징

 1.생명력이 없음

 2.형식적

 3.오락의 요소가 증가

 4.보편적 메세지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 6: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교회(성도)가 감당해야 할 임무   / 예배, 양육(교육), 전도, 사랑의 교제

그 가운데서 예배가 가장 중요 - 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능력과 힘을 공급 받아야 다른 것들이 가능. 예배가 회복되어야 양육도, 교제도, 전도도 가능

지난주일 예배가 살면 - 안디옥 교회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 하나 됨, 세상을 이길 힘, 비전 - 부흥의 역사가 일어남


오늘의 예배의 문제점

형식적 - 어떻게 회복 될 것인가? 고민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을 경험, 치유, 회복, 거듭남, 성령이 자유롭게 운행하실까? 공통적 고민

순서 바꾸고 악기 들여다 놓으면 되는가? 악기 같다놓고 순서 바꾼다고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에요. 한 때 경배와 찬양 유행 - 악기점에 악기가 없을 정도로 많은 교회에서 구입 - 1년 후 중고로 가득

모양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가치관을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적 근거 가치관 배경을 이해가 성경적이어야 하며 그러한 성경적 예배를 드릴 때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예배회복 시리즈를 통하여 예배와 관련된 성경적 배경, 하나님께 상달된 예배는,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어떤 자세, 무엇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1. 신앙의 본질과 예배

 1)예배는 의식으로서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 신앙의 본질입니다. 왜 예배는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의 토대위에 예배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의 회복입니다.


여기 신앙의 본질이 의미하는 것이 뭐냐?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신앙의 본질 -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 거예요. 그분을 알아야 그분을 사랑하게 되요. 아는 만큼 사랑의 온도가 뜨거운 거예요.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

의식(제사, 번제)은 본질을 담는 그릇-그러니 의식 속에 신앙의 본질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예배 가운데 신앙의 본질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 우리가 결혼 - 결혼반지 - 반지 -(의식), 사랑-(본질)

     아무리 비싼 반지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예배는 의식입니다. 이 의식 가운데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 생각, 시간, 정렬, 물질, 취미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드리는 삶으로 전환되는 겁니다. 즉 지금 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는데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삶의 목표, 목적이 전환 됩니다.


이처럼 예배 가운데 신앙의 본질이 담겨지려면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즉 내 삶의 목적, 목표가 전 존재가 전환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뭐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즉 내 삶의 목적, 목표가 하나님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이렇게 전환된 무리들이 모여 드리는 의식이 예배입니다.


 2)예배는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시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시 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 24: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 24:10)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시24은 예배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 - 시온산,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산 - 산에 오른다 - 예배로 나아가는 것,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예배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 예배라는 겁니다. 다시말해 신앙의 본질을 구하여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였는데 - 안 돌아와서 징계를 받았다. 문제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아오라 - 이 말은 보다 많은 의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호세아 시대 그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헌금, 기도, 구제, 월삭을 지켰습니다.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어요, 그런데 이러한 자들에게 돌아 오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보다 많은 의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라면 우리보다 그들이 훨씬 잘했어요. 이러한 것에서 돌아오는 것이라면 호세아 시대 사람들은 돌아올 필요가 없었어요. 왜 그들은 이미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야야를 톱으로 켜 죽였던 겁니다.

 

여러분 돌아오라는 것은 보다 성경 많이 보고, 기도하고, 헌금 많이 하는 것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열심이 하는지 몰라요.

여러분 돌아오라 라는 말을 잘 이해하세요. 보다 많은 의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피운 남자에게 - 돌아오라는 것은 옷사주고, 맛 있은 음식 사주고, 놀러가고, 영화 보러가고 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잘하고 있어요, 이것이 돌아오는 것이라면 돌아올 필요가 없어요.


사업실패 - 하나님께로 돌아와 - 이 말의 의미는 교회 나와서 도와달라고 기도해 - 중요 -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또 사업에 실패한 성도를 권면할 때 주님을 찾아야지 합니다. 여기서 주님을 찾는 것은 주님께 나아와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경이 말한 주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본지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


정리

하나님께 돌아간다- 의식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찾는 것이 아님, 본질로 돌아와야 함을 의미합니다.


2.자기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님

우리는 물론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머물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을 알기 우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하 15: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 헌금, 기도 가 아님.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으면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우리 전 존재로 사랑하면

만일 저를 찾으면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임.

만일 저를 버리면 -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는 것


엘리 만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블레셋과 전쟁, 두 아들이 죽음, 그런데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자빠져 목이 부르져 죽음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자식보다 법궤를 더 귀하게 여김 그런데 이런 엘리를 하나님은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는 말씀과 같이 엘리를 경멸의 반열에 두고 계시다는 겁니다.


처음 하나님 네 집과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약속 그런데 이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본질에서 떠났기 때문, 그러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약속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성격책 - 차에 싫고 다니는 것과 같음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 더딤, 그러나 우리 일, 자기 이득, 자기 목적에는 얼마나 빠른지

하나님은 엘리를 경건의 반열에 두지 않았어요.

존중히 여긴다 - 우리 마음으로 귀하에 여기는 것이 아님. - 본질에 서 있는 것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가까이 하라, 돌아간다, 찾는다, 함께하다 - 이 모든 것은 보다 많은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나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님

돌아오라, 가까이 하라 - 신앙의 본질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인격체 이신 하나님을 알고 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목적, 목표인 삶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지만 -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일시적 종교의식으로 돌아서는 것으로 문제 해결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 목적, 가 전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배 -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위하여 나옴.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하나님의 임재를,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기 위하는 마음으로 예배로 모여 보십시오.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없는 예배 헛된 예배

사1장11,12 무수한 제물로 예배를 드렸어요 정성을 다해 예배드렸는데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 속에 본질이 없으니.. 헛된예배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가리켜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그들이 얼마나 안식일을 잘 지켰나요,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본질이 없어요. 삶이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예배 -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표, 목적,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님.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는 예배가 참된 예배.


(렘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돈과 정성을 들인 예배 - 그러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심 - 왜 본질 가운데 서있지 않기 때문, 하나님이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수단으로서의 예배 - 헛된예배


본질 없는 예배의 특징

1)생명력이 없음

생명력은 신앙의 본질에서만 나옴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면 생명력이 없게됩니다.


(렘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가졌와 드렸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며 달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 내 법을 버렸기 때문에 여기서 버렸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서 있을 때 생명력이 있음 왜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예배가 과연 생명력이 있는 예배인가? 없어요, 왜 하나님을 떠나있기 때문


2)형식적임 - 본질이 없으면 형식에 치중하게 됨

형식적인 것은 율법주의에서 나옴.

율법주의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보다 종교생활에 치중합니다. 형식, 절차, 정성을 강조합니다. 저성의 뒷 배경에는 자기 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외적 모양을 강조.


3)오락의 요소가 증가

예배의 본질이 없으니 예배의 흥을 맞추기 위해, 사람에 맞춤, 분위기 맞추는데 치중

열린예배 - 잘못 적용


4)보편적 메시지

삶의 행복을 제공하는 악세사리

낙하산과 같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 지옥안가는 보증수표

신앙생활 했으니 지옥에는 이제 가지 않을 것이고. 안심하고 놀 수 있는

이러한 사람은 말씀으로 해부하는 것을 싫어함. 보편적 메시지를 좋아함.


성경이 말한 진정한 믿음을 작지 못한 모습.

진정한 믿음 - 인격체 이신 하나님께 생명을 거는 것


당시 거짓 선지자 다윗의 나라가 영원하다 이 말씀을 믿고 우리가 망하다니 우리는 절대 안 망한다고 평화 메시지를 전함.


또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 -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이해 못함, 그래서 죽인거예요.


롬11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 남은 자가 영원하다는 것인데도..


예수님께서 사두개인 (마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요즘 성령을 이론적으로 알기 때문에 삶속에 전혀 성령의 역사가 없음

여러분 성경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다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말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

말씀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을 말함

다림줄과 같이 하나님의 기준이 적나라하게 나타나야 함. 그래서 그 말씀에서 나를 탐사해야 함. 그래야 변화가 일어남.


묵상 -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탐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탐사할 때 말씀 앞에 꼬꾸라집니다. 그래서 탄식, 절망, 실망, 애통하는 이 과정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물면 안되요, 예수님께로 인도가 피요(몽학선생)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로만 가능하며 주님의 은혜를 절박함을 구함- 이것이 변화되는 과정


예배

신앙의 본질의 토대위에

본질을 구하는 도구

예배를 통하여 본질을 추구하고

본질 가운데 선 사람이 예배 앞으로 나오게 될 때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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