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8강 - 하나님 나라의 비유

강의자료/하나님나라

by 발의무리 2007. 10. 6. 12:52

본문

 

하나님 나라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3절부터 입니다. 본문은 개인이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에 대해 선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우선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임을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물론 모든 복음서가 증거하고 있지만 그중 마태복음이 특히 강조합니다. 마태복음은 시작하면서부터 왕으로 오신 주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보다 더욱 더 많은 비유들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역이나 영토의 개념보다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좌정하시며 다스리시며 통치하시며 운행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왕으로 통치하실 때 그곳에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는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결과 성령의 조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또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좌정하시고 운행하시고 다스리시는 가운데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향력을 전 나라와 민족으로 사회로 확장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자동적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 속에서 왕으로 임재하시며 좌정하셔서 개인의 삶을 다스리시며 운행하시며 바꾸시며 인도하시며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가시며 죄를 이기게 하시며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을 세상에 알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좌정하시며 왕으로 통치하시고 계시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가운데 세워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가운데 세워지면 그곳에는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주를 향한 열정과 주를 사랑함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습니까? 의의 행실로 만들어진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지 아니면 발가벗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넘쳐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세워지면서 흐르게 될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이것 못지 않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신부인 우리들을 데리러 오십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의 성격


  13장 44절부터 46절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 비유는 천국을 소유하는 방법과 교회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질 수 있는가 하는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의 메세지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화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 나라가 초점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사역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춰집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보화나 진주는 하나님 나라도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신앙의 본질을 일컫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되어지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가 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와 목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하고 필요하는 것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이 신앙의 본질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는 임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정한 생명과 통치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가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이 되어진다면 하나님 나라는 임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치관과 세계관 아래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는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강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많은 법인데.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을 알면 이런 의문점은 사라집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입니다.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은 미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4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3장 7절입니다.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보십시오. 가족을 미워하면 기도가 막힌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미워하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비하면 미움이 될만큼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라는 얘기입니다. 자식이나 지위, 명예나 물질이 소중하지만 계획이나 비전이 소중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비하면 그것들을 미워하는 것이 될만큼 하나님이 목적이 되라는 말씁입니다. 그렇게 되면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의 말씀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미움이 될만큼 하나님을 목적하여 살면 이 때에야 비로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해도 주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왕이시니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목적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꼭 미움처럼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나를 위하여 잃으면 얻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가진 모든 것으로 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안되면 출발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이 안되면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와 은혜가운데 경험되는 생명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것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안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암초를 만난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에게 예외없이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회복되려면 거짓 신앙체계들이 깨어져야 하며, 이것이 진이 오염된 것이기에, 금송아지가 깨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금송아지가 가득합니다. 교회당에 와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지만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는 직분을 떠나 인식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돈의 법칙으로 살아갑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왕이라고 하지만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는 것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거짓 신앙체계 아래서는 이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되시는 삶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구분된 삶을 살아감으로 가능합니다. 오염된 진 가운데 있으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운운한다고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될 때 임하십니다. 지도자들은 그 삶을 살뿐만 아니라 줄기차게 이 가치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증거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세워지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갈망하고 소망한다고해서 세워지지 않습니다.


  내 삶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본질 위에 서기 위해서 내 모든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교회에서는 이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보는 자들이 생기며 그들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져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일이 교회 가운데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4장 25절부터 27절입니다.


○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이 구절에서 허다한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실제로 예수님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굳이 전도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을 잘 보살펴서 교회 일원으로 적응하게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이 향해 하신 말씀은 우리의 혀를 찌릅니다.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을 들었던 백성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과 형제, 가족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데 그들을 미워하라는 말이야. 어떻게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미움이 될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시듯 펀치를 날라십니다.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십자가”가 오늘날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냥 “내 남편이 십자가예요”하면서 십자가가 이해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죽으로 끌려가는 장면으로 연상했습니다. 당시의 십자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형틀로서의 십자가. 즉 사형을 집행하는 형장으로서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세상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던 계획이나 목표, 목적에 대한 미래, 개인이 얻고자 했던 수준의 삶 등을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죽어야 모든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살아 있는 한 개인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모든 것으로 사라는 말씀은 자기가 죽으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여러분, 십일조 드리는 사람에게 십의 이조를 드리라는 말씀만 해도 넘어갈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감사헌금을 더하라는 말씀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강한 메시지입니다. 죽으라니.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너무 은혜가 되어 항상 듣고싶은 설교이지만 걸림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지금 우리보고 자기를 따라오라는거야. 말라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설교도 좋고 능력을 베풀어 우리 배를 채우는 것까지는 좋아. 그런데 죽으라는 말씀은 왠지 어려워. 백성들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생각에 불을 질렀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8절부터 33절입니다.


○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짓다가 그만둔 건물이 보기 흉한 것은 사람이 다 압니다. 전쟁을 치루는 임금이 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채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불을 지르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모든 소유를 다 버리라고 하십니다. 드디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셨습니다.


  당시나 오늘날이나 돈은 사람들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아니, 십일조를 더 하라는 말씀같으면 이해가 됩니다. 감사헌금 더 바쳐. 이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소유를 버리라니. 당연히 쓰레기통에 모든 돈과 저금통장을 갖다 버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것으로 주님을 사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경제적인 소유권을 주님께 이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자 허다한 무리 중에 상당수가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메시지가 너무 강하고 무겁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토록 강한 메시지를 전하셔야만 했을까요? 알다시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속죄제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신데 무슨 이유로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을 돌아서도록 만드시겠습니까. 주님은 진실로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강한 메시지를 통해 백성들이 돌아서도록 하셨을까요? 아마 자기에게서 돌아서서 집으로 향하는 백성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무척 마음아파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렇게 설교하셨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이 길 외에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만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법인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하면 거짓 신앙체계 속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강한 면이 있어서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모두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예수님처럼 설교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설교는 듣기에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설교를 듣는 자로 하여금 상처를 안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듣는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설교를 듣겠다고 모였는데 자기들을 치는 듯한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사모하며 모였는데 위로의 메시지가 아닌 칼로 도리는 듯한 설교를 듣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식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인식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비유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인식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떠나있으며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를 기뻐하지 않는 것. 아무리 상공적인 삶과 부와 명예가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이 더 이상 함께 하시지 않는 삶.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 하나님의 임재가 걷혀 하나님이 더 이상 운행하시지 않는다는 사실. 이같은 점들을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제시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인식이 되어져야 전환도 가능하고 주저하지 않고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성경에는 예수님을 사모했던 무리들일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점이 이해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오고 교회 가운데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고 성경에 나타난 일들이 나타나며 열매들이 보이기 전이라도 하나님은 개인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십니다.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다른 메세지가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누가복음 14장의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초보자들에게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의 말씀을 전하다가 신앙이 자라면 네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시종일관 주님을 따르는 기본 자세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떨 때 설교를 하다보면 성도들 뒤에 쇠벽이 있는 것같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설교가 날라갔다가 쇠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가집니다. 물론 이해가 갑니다. 많은 분들이 그저 이 교회는 어떻게 예배드리는가 구경하러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씀이 괜찮으면 다녀보려고 왔습니다. 나를 설득시켜봐 하는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세를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지 않는 것을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부흥될 수 있을까 하지만 길은 하나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임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교회는 달라집니다. 이것이 저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으니까 그 말씀 부여잡고 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누에 보이지도 않고 된다고 하는 보장도 없고 그저 말씀뿐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길이 보여지고 우리의 상황이 인식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뒤를 보면 엣날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앞은 보이자 않고 뒤로 갈수도 없고 그러면 서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징징거리면서 하나님, 앞으로 살게되는 겁니까 죽게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도와주세요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게 됩니다. 서있을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만 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조금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화분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죽어야 하는데 도리어 더 잘 산다는 겁니다.


  주님의 메시지를 전할 때 주님이 먼저 보여주셔서 자신이 먼저 전환되지 않으면 갈 수도 없고 주님처럼 전할 수도 없습니다. 새러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신앙체계의 견고한 진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우리 가운데 심각하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자세가 아니면 어려울 지경입니다. 견고한 진은 한두마디 설교로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배를 젓는 것과 같습니다. 서있으면 떠내려가니까 죽도록 저어야 삽니다. 그러다가 상류로 올라가면 물살이 약해지니까 숨을 돌리 수 있습니다. 주님을 좇아가면 언젠가 전체가 조금씩 보여옵니다. 하나님의 길이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좀 더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이 때가 되면 좀 더 쉬워집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 보입니다. 보이니까 훨씬 쉽습니다. 이것이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반응


  씨뿌리는 비유에서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말하기를, 씨앗을 심어라 즉 헌금을 심어라 그리하면 30, 60, 100배에 이른다. 그리고 배짱있게 100배부터 시작하라. 그러나 이 비유는 헌금의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입니다. 네 밭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전파되면 반응하는 네 종류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혹은 네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줄기차게 전하면 나타나는 반응들이니까요.


  우선 처음 씨앗은 길가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새가 먹습니다. 여기서 길가란 굳은 마음 즉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없는 마음입니다. 사탄이 훔쳐갑니다. 나중에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지적하는 굳은 마음의 소유자는 당시 바리새인들을 지칭합니다.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배우고자하는 자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이해와 전통적인 이해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세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가서 예수님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굳은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영적인 분별력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전통적인 이해나 개인적인 체험, 당시의 신앙관 등을 다 내려놓고 말씀이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하는 자세르 가지고 말씀 앞에 겸손이 엎드리는 자세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길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여겼습니다. 문제는 영적인 분별력이 가리워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밀을 비벼 먹을 때 안식일 범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일로 규정하는 종교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를 분별하지 않았고 말씀 앞에 엎드려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일을 비춰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그러하면 자신들의 안다고 여기는 생각들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하는 자세를 가지고 주님 앞에 갔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평가하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열심으로 함부로 성령의 일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둘째 밭은 가시밭입니다. 씨가 났습니다. 그런데 가시가 줄기를 찔러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듭니다. 세상 재물의 욕심과 염려가 가시라고 주님은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13:0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13:0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13:0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13:0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13:0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13:0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0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

마13: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13: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13: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마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마13: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마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마13: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마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마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13: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마13:50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마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마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마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

마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

마13: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마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마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