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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제자리찾기]깨어라 남성들이여! 「남자입니까?」③

강의자료/남성제자리찾기

by 발의무리 2007. 10. 1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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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제자리찾기]깨어라 남성들이여!
「남자입니까?」③

 

ꡒ상의할 문제가 있습니다.ꡓ
그 젊은 여인은 조금 수줍은 듯이 말했다. 그 시간은 동부 연안 지역의 종업원들을 위한 오후 기도회를 마치고 난 때였다.그녀는 머뭇머뭇 거리며 말했다.
ꡒ사실 저는 제 문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남편은 저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남편은 제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ꡓ
그녀는 갑자기 격정적으로,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그녀는 심하게 훌쩍거리면ꡒ남편은 침대 맡에ꡐ플레이보이ꡑ, ꡐ펜트하우스ꡑ(미국의 도색잡지 들-역자주), 그밖의 다른 누드잡지를 놓아둡니다. 남편 말로는 저와 부부관계를 갖기 전에 그 잡지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그것들이 자기를 자극하기에 필요하다는 것이죠.ꡓ
그녀는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어렵게 말을 꺼내놓았다.
ꡒ저는 남편에게 그런 잡지들은 하등에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왜 그런 잡지들을 곁에 두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런 잡지들을 더 사모으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ꡓ
ꡒ남편의 직업은 무엇입니까?ꡓ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ꡒ남편은 젊은 목사입니다.ꡓ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알아차리고 나서는 믿기지 않아 말을 멈추었다. 나는 이 여인이 나에게 자기 남편은 침대에 도색서적을 한 무더기나 놓아두는 젊은 목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ꡒ당신의 남편은 젊은 목사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는 도색서적 작가이기도 합니다.ꡓ
그 여인은 떨구었던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을 도색서적 작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ꡐ문제ꡑ로 위장되고 있는ꡐ죄ꡑ
현대에는 죄라는 것이 없다.단지 문제라는 것이 있을 뿐이다.우리는 복음을 심리학적으로 윤색해왔고,그 과정에서 ꡐ죄ꡑ라는 단어를 우리의 어휘에서 제거해버렸다.
언제인가 한 여인이 슬픈 사연을 가지고 나를 찾았다. 그녀의 남편은 오랫동안 그녀를 구박하다가 마침내 이혼을 선언한 채 그녀를 버렸다. 교회생활을 하였고 믿음이 있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끌려 교외로 나가 어떤 남자와 함께 주말을보냈다. 그녀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그녀는ꡐ생물학적 욕구ꡑ를 충족시켰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내 사무실에 들어와 앉았을 때ꡒ당신은 간부(姦夫)입니다.ꡓ라고 말했다. 그녀의 눈은 동그래졌고 얼굴은 충격으로 안색이 바뀌었다. 내가 자기를 간부라고 하자 기분이 상한 것이었다.그렇지만 간음을 범하였으니 그녀는 분명 간부였다.그녀에게 이일은 죄가 아니었고 단지 그녀가 가진 문제에 불과했다.
오늘날 우리는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문제에 대해서 말한다. 그 이유는 문제에 관하여는 반드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만일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 문제에 감응하거나 이해하거나 혹은 몇몇 이름 있는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와 달리 죄는 회개해야 하고 고백해야 하며 용서받아야 한다.
프로이드가 죄라는 단어를 없애버리기 원했던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성경의 언어를 변조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죄들을 대면하지 않고 회피하여 왔다. 하지만 죄를 대면하지 않고서는 죄들에 관해서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다. 인생의 모든 문제들은 누가 뭐래도 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그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으로서 자기를 죄에서 구해줄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하나님은 사람의 문제들을 아셨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모든 문제들에 해답이 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의 권징은 많은 영역에서 해이해져 있고 약해져 있으며 비실재적이다.
사도바울은 권징을 권장하였다. 바울은 만약 누가 형제라고 자처하면서 옛 습속을 여전히 따르거나 죄를 습관적으로 짓는다면 그와 사귀지 말고 심지어 그와 식사도 함께 하지 말라고 기록하였다.(고전 5:11)
이러한 말씀을 기록할 때 바울은 주님의 마음으로 썼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이 징벌을 받지 않은 채 죄를 계속 범하면서 성도의 교제에 다 참예하도록 허용 받는다면 그는 자기의 죄를 직면하고 고백하며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말 것이다.
가끔 죄를 범한 사람은 문제에 부딪쳐 있다거나 불행에 처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권징으로 그 죄를 다스리면 비통하게 눈물을 흘린다.
인간적인 슬픔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을 후회할 때 나온다. 그러나 거룩한 슬픔은 죄를 후회하고 그것을 떨쳐버리려는 소원을 가질 때 나온다.
만일 바울이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고 진리에 눈멀게 하는 현대 사조의 아성을 공격하면서 유약한 20세기의 세속적인본주의자들을 향해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현대 사조에는 확실히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의 가르침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들이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죄는 고백해야 해결돼 우리는 죄가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도록 유혹 받아왔다. 하나님의 영생을 회피하는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현세의 가르침들은 ꡒ모든 사람이 범죄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매ꡓ라는 성경보다는ꡒ나도 좋고,너도 좋고ꡓ라고 가르친다.
나는 골치를 썩고 있는 목사님 한분과 차를 마신 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 성가 대원들은 오래전부터 성가대 지휘자가 동성연애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무슨 일이 벌어져서 변화가 생기기만을 모두 바라고 있던 차에 이것을 목사님이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많은 시간 기도하고 이일에 해당되는 말씀을 부지런히 찾아본 후에 그 지휘자와 만나 논의하자 지휘자는 모든 것을 시인했다. 그 목사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지휘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두 가지 .ꡒ 중에 하나를 해야 합니다.회개하든지 사임하든지 하나만 하셔야 합니다.ꡓ 그 지휘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더니 어느 쪽도 하지 않겠다는 얄팍한 결정을 내렸다. 한술 더 떠서 그는 성가대원들에게 말을 퍼뜨리고 나중에는 교우들에게도 비위를 맞추며 말을 옮기고 다니기 시작했다.
급기야 성가대 대장은 문제에 빠져있는 지휘자를 이해하고 사랑해주지 않는 완고한 목사님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 목사님은 ꡒ만일 그를 사랑과 이해로 감싸기만 한다면 그는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ꡐ결코ꡑ 그 죄를 떨쳐버릴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ꡓ라고 말했다. 목사님과 성가대 대장은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하였다.
성가대 대장은 문제를 더 확대시켜 다른 교회 성도들에게조차 그 목사님을 사랑이라고 털끝만치도 없다고 정죄하고 비방하면서 교회를 휘젓고 다녔다. 결국 목사의 사임문제를 거론한 공동회의가 열렸지만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이 신실한 목사님은 남게 되셨다.
그러나 성가대 지휘자는 많은 동조자들과 함께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난국을 맞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경건한 목사님의 입장을 옹호하셨다. 현재 그 교회는 그러한 위기를 겪기 전보다 더 든든히 서가고 있다.


인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차이는 죄에 직면했을 때 드러나는데, 인간의 지혜는 죄를 묻어버리기 원한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려고 했다. 먼저 아담은 자기의 벗었음을 가렸었고 그 다음 그는 죄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허물과 실패를 하와에게 전가시킴으로 자기 정당화를 시도했다.
그 수심에 찬, 그러나 강직한 목사님은 인간의 지혜와 값싼 감상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대신하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 분은 죄가 은폐되고ꡐ어떤 문제ꡑ쯤으로 치부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이 오늘날과 같이ꡐ문제 해결방안ꡑ으로 전락하기 오래전에 죄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책을 쓰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명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지고한 말씀을 어기는 풍조를 보아 넘기시지 않는다. 자유방임적 태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뿐더러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돌이켜 순종할 것을 명령하신다.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간극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넓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적 지혜안에서 우리의 정욕에 맞도록 가치체계를 다시 순서 매겨 왔다.
사람은 자기의 우주 공학, 세련된 의복, 함축성 있는 타임지를 보면서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의문들을 제기하기만 하고 답을 주지 못하는 철학들을 가르치거나 배운다. 또한 창조를 조롱하지만 진화에 대해 자신이 믿는바 증명되지 않은 가설 외에는 아무
증거도 대지 못하는 과학을 절대 신봉하고 있다.
ꡒ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ꡓ라고 야고보서3:13은 꼬집어 묻는다.ꡒ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ꡓ
시기 분쟁 난제들로 가득찬 , , 어지러운 세상은 우리의 교만하고 속된 지혜의 산물일 뿐이다.
인간적인 지혜에 근거한 지금의 불순한 사조는 불화, 상처, 그리고 끝내는 파멸을 가져다 준다. 에덴동산 이후로 사람이 기술적 지식을 조금 더 소유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이 개선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인간성이 기술적 숙련으로 진보된다는 것은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쥐고 있으니 식인종이 개화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야보고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ꡒ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ꡓ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이다.
우리 자신의 일을 하도록 우리를 떠미는 인간의 지혜는 우리를 가나안땅으로 인도할 지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기까지 결코 우리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진리는 진리이다.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은 간음에 지나지 않는다.하나님은 말장난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그분은 사람의 언어를 말하신다.따라서 성경은ꡐ죄는 죄이다.ꡑ라는 도식을 세우고 있다.
말은 값싼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전하시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셔야 했다.우리는 장부답게 죄에 태클을 걸기 시작해야만 한다.
<에드윈 루이스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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