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삶과 사역은 우리의 삶과 사역을 위한 온전한 모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빚어 가시는데, 그 모델이 예수님입니다(롬 8:29).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 있어서 예수님처럼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보아야 하고 또한 그분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마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지침서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의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지침서로서 기록되고 또한 초대교회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사역을 위해 복음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서로 돌아가서 예수님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특히, 우리들은 오늘날 복음의 열기가 날로 식어가고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어느덧 그럴 듯한 말에 의해 약간의 감동을 받는 것으로 전락해 보리고 말았고,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는 온각 세상의 죄와 사탄의 억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고, 예수님의 이름은 세상의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죄와 세상과 사탄의 세력들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강팍할대로 강팍해진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구원하고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회복되어야 할 절실한 필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 복음서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면을 모두 합하여 보면, 우리들이 배워야 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주님의 사역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여기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우리들의 삶과 교회 안에 예수님의 사역이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1.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권세가 뒷받침되는 말씀의 사역, 즉 선포(proclamation) 선포(proclamation)
① 선언, 선포, 포고 ② 성명서, 선언서
와 능력 행함(demonstration)의 사역이었던 것과 그것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무리들이 따랐던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마가복음의 예수님 사역에 관한 첫 번째 기록으로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안식일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1-28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막 1:21-28)
(1) 예수님 사역의 강조점 - 말씀선포와 능력 행함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 사건을 앞으로 나올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나 모델 혹은 패러다임 paradigm
① 패러다임, 이론적 틀[짜임새] 《어느 시대나 분야에 특징적인, 과학적 인식 방법의 체계·시스템》
② 예, 모범, 전형(example)
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권세 있는 가르침의 사역, 즉 말씀의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었고, 이로 인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온 갈릴리로 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바쁜 하루를 지난 다음 날, 새벽인데도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 1: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전도하다”라고 번역된 부분은 “선포하다”라는 말입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권세가 뒷받침 되는 선포의 말입니다. 즉 말씀의 선포와 능력의 행함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나가서 행하신 바를 기록한 성경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막 1:38-39)
(2) 제자를 뽑으시는 부분에 나타난 예수님 사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뽑으신 목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3-15)
예수님이 제자를 뽑으신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보내어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과 똑 같은 사역 즉, 말씀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막 6:7, 12).
(3) 승천하실 때 내린 명령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모든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령과 제자들이 나가서 그 명령대로 순종한 내용에도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15-20). 이처럼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권세있는 말씀의 사역 즉,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었던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사역인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4) 또 하나의 강조점
마가복음의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또 하나의 강조점은 예수님의 말씀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을 통해서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로 인하여 식사를 하실 수 없었고, 쉬실 수도 없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사건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말씀의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었고, 이로 인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온 갈릴리로 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만 해도 해가 저물자, 다시 말해서 안식일이 공식적으로 끝나자, 온 동네가 모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 문 앞에 모여 들었고, 예수님은 밤늦게 까지 그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막 1:32-34). 그 외에도 이러한 강조점은 마가복음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막 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2: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막 2: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막 3:7-8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막 6:31-32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우리들이 주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는 말세 지말에 전 세계에 미치는 대추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이 회복됨이 없이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2.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 사역이 권세있는 말씀의 사역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 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가복음도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막 1: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 마태복음 1장~7장까지 예수님 사역의 정리
예수님님의 사역의 시작에 대해서도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구조를 보면 하나님 나라 사역에 대한 마태복음의 강조를 더욱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마 4:23-25). 예수님 사역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앞에 나오는 1장에서 4장까지는 서론과 같은 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의 사역, 그리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사건 등이 그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태복음은 4장 마지막 부분에서 부터 예수님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함으로써 시작합니다. 우선 이 요약을 보면, 예수님 사역이 말씀의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었던 것과 그 사역이 하나님 나라 사역이었던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구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은 9장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다시 한 번 똑같은 방법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모든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그러면서 그 사이에 있는 다섯 장에서, 예수님 사역의 이 두 가지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즉, 5장에서 7장까지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 중 말씀의 선포에 대한 부분을, 8장에서 9장까지는 능력 행함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함으로 시작해서 그 내용들을 자세히 다루고, 다시 요약함으로써 결론을 내리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장에서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사역도 예수님의 사역과 정확하게 똑같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음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1,7-8). 우리가 이 부분을 마가복음에 나오는 똑같은 사건에 대한 기사와 대조해 보면, 그 강조점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 사건을 단순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 5:7,12). 반면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말씀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사역이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마태복음이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 나라의 말씀 선포에 대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은 '산상수훈'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마태복음의 구조 가운데서 새롭게 이해하게 될 때, 이 구절은 그저 예수님의 단편적인 가르침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촉구하고 계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법을 가진 삶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흔히 우리들이 '팔복' 이라고 부르는 이 절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우리가 이렇게 하면 이러한 복을 받는다는 식의 "복걸복"구절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삶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 그 하나님 나라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들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은 심령이 가난한 자요, 애통하는 자요, 온유한 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요, 긍휼히 여기는 자요, 마음이 청결한 자요, 화평케 하는 자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를, 위로를,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을, 채움을 받을 것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을, 하나님을 볼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을, 그리고 하늘에서의 큰 상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2) 마태복음 8장 ~ 9장에 나타난 사역
하나님 나라의 능력 행함에 대해서도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태복음 8장과 9장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 사역을 대표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별로 가장 극적인 사건들을 본보기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에 있어서는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을, 그리고 치유에 있어서는 문둥이를 고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장들을 살펴볼 때, 예수님이 감당하신 그리고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능력 사역이 어떠한 것들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감당하신 그리고 아울러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능력 사역의 영역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죄의 용서, 질병으로부터의 치유, 가난과 억압적인 사회구조로부터의 자유, 마귀 세력의 억압과 지배로부터의 구원,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 죄의 용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죄 용서를 선포함으로써 그 사람의 영을 치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능력 사역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명하신 것들이기도 합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7-8).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지도 못하고 또 얼마나 하나님 나라의 사역도 감당치 못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적당한 수준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삶을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삶을 살아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그리고 교회들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고 그들 가운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 시민의 삶을 살아갈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도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28장에 나타난 대위임령과 예수님의 사역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는 대위임령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28:18~20에 나오는 명령은 예수님 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세상의 비유로 치면 부모님의 유언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령을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네 가지 사항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복음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파하라고 명령하신 복음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복음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18절과 2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 복음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들이 다음 장에 나오는 사도들의 사역을 보면, 더욱 선명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예수님의 명령을 잘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12 제자들을 비롯한 약 500명의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 삼음에 있어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12제자들 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들을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명령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12제자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과 일반 성도들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부분들은 특별히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일반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8:18-20은 정확하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제자는 모든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의 선포와 하나님 나라의 능력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12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고, 12 제자들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아 배운 그대로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 속에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 집회에 참석한 어떤 사람들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기도사역 하는 것을 보고, "목회자만 '안수권' 이 있는데, 어떻게 평신도가 안수하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저는 그러한 사고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안수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의 명령에 의하면, 모든 성도들이 다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는 마치 전교인 제직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성경적 자세는 전교인 사역자화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다른 사람들을 예수 믿게 인도할 뿐 아니라, 그들을 12제자들처럼 되도록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것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정직하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성도들에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선을 넘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주 성도들이 교회를 떠날까봐 혹은 시험들까봐 하나님의 복음을 정직하게 전하지 못합니다. 소위 성경에 나오는 좋은 구절만을 택해서 성도들을 표면적으로 위로하기에 급급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정직하게 전할 때,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뒷받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누가복음 역시 예수님의 사역이 말씀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었던 것과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복음은 그것에 덧붙여서 그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조는 처음부터 아주 명백합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가랴, 엘리사벳, 시므온 등과 같은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강조는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3:22). 물론 이 점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곧 바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을 때의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 또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광야에서 돌아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눅 4: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누가복음의 강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 공생애의 첫 번째 사건을 보아도 누가복음이 얼마나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사건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장 첫 번째 사건은 아닙니다. 누가복음도 그것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4:15). 그러나 누가복음은 이 사건을 맨 처음에 기록함으로써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복음은 이 구절을 앞으로 나올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하나의 패러다임(paradigm paradigm
1 패러다임, 이론적 틀[짜임새] 2 예, 모범, 전형(example)
)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야 말로 앞으로 나올 예수님의 공생애를 요약해 놓은 것과 같으며, 우리에게 여기에 제시된 패러다임 혹은 모델을 통해서 앞으로 나올 예수님의 공생애를 이해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16-20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해 놓은 것과 같은 이 부분에서, 그리고 앞으로 행해질 예수님의 사역을 비추어 볼 수 있는 패러다임과 같은 이 구절에서 누가복음은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우선 예수님의 사역이 말씀 선포와 능력 행함의 사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사역의 성격이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것임을 역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시되,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누가복음을 쓴 저자가 기록한 사도행전도 예수님의 사역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서 역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행 10:38).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었다는 강조는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사건과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내용 중에도 매우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보내시며 6 제자들이 나가 각촌에 두루 행하여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눅 9:1-2,6). 그리고 예수님의 대위임령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7-49).
우리는 특히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기다리라는 이 명령을 다른 사람들도 아닌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 분으로부터 모든 훈련을 받은 제자들에게 하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 제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그것도 오늘날의 제자훈련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한 두 시간 훈련받은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날마다 하루에 24시간을 그 분과 같이 살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오늘날처럼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리님 나라의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지켜보고, 또 예수님의 보내심을 따라 실습도 해가며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먼저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누가복음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 1장으로 이어져서, 거기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십니다. "1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4, 8). 그리고 그것은 사도행전 2장으로 이어져, 거기에서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나가서 예수님께서 감당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감당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그리고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누가복음
아울러 누가복음은 성령의 능력과 관련하여 기도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누가복음에는 어느 복음서보다 예수님의 기도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눅 3:21-22, 4:1-2, 4:42, 5:16, 6:12, 9:18, 9:28-29, 11:1,22:39-45 참조).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새벽기도를 하셨고, 철야기도는 물론 기도원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금식기도와 기타 여러 가지 형태로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5:15-16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얼마나 중요시 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이 얼마나 의아한 모습입니까? 사람들이 전국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 온 것도 아니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이 행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서 모여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말씀도 듣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도 경험하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남겨두고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날로 빗대어 말하면,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는데, 강사가 기도원으로 기도하러 가버 린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말 성경에는 그 단어가 빠져 있습니다만, 개혁성경이나 NIV 성경과 같은 영어성경에는 모두 그러한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기도를 중요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교제야말로 모든 것의 핵심이며, 또 모든 사역이 그것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기도를 강조하면서, 기도와 성령의 능력과의 관계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몇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3:21-22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셨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기도와 성령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도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기록함으로써, 역시 기도와 성령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1-13). 또한 누가복음 11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이 구절 앞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는 강청하는 기도(5~8절), 기도 응답에 대한 반복적인 약속(9~10절) 모두 성령을 구하는 기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그만큼 기도와 성령의 관계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3) 기도와 성령과의 관계
그 외에도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셨다고 기록하는 등 예수님의 기도의 뒤를 따라 놀라운 성령의 역사들이 나타난 것을 기록함으로써 기도와 성령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었던 것과 또 그것이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점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들도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셨다면,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그렇게 직접 훈련시키신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입으라고 명령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오순절 이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시기 때문에 이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이 오순절 이후에 태동한 교회를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들 속에 성령님이 와 계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로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4.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끝으로 요한복음은 위에서 살펴본 모든 것에 덧붙여서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과의 철저한 교제 가운데서 나온 사역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은 5:19~20입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님은 아무것도 임의로 행치 않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 것만을 행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매순간마다 하나님께 민감하여, 그 분이 말씀하신 것만 행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사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을 예수님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이러한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이곳에만 단편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몇 구절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 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26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28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6,28).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니”(요 10:37~38).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0-11). 이처럼 예수님은 순간 순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철저하게 하나님께 혹은 하나님의 성령께 민감하여 그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1) 요한복음 5장을 통한 예수님의 사역
그런데 요한복음 5장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19~20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오직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만 행할 따름이라고 하신 것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이따금씩 물이 동하는 것은 천사가 내려온 것을 의미하고, 그때 그 물 속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을 가졌든지 낫는다는 전설을 믿고 치유를 받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설의 내용이 사실이었나 아니었나 하는 것은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 당시 그러한 전설이 있었고, 그 전설로 인하여 그 곳에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날 그 곳을 지나가시다가, 그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서 38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한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대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고치시면서 일어나 누워 있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안식일을 범한 처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방금 하신 행동을 설명하시면서 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곳을 지나시면서 하나님이 그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잠간 기다리라고 말하고 한쪽으로 물러가서 기도하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곳을 지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모여 있는 환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중에서 38년된 그 병자를 고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은 그 때 그 병자에게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하면 그 주위에 있는 많은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대적하고 나설 것을 분명히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에 있어 그러한 것들이 결단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순종하시는 것이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관한 그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만을 어길 따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단호한 의지는 바로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답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오늘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날 그 많은 환자들 중에서 딱 한 사람만을 고치신 이유도 예수님의 사역이 이처럼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 가운데서 나온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 강조된 것과 같이 수시로 한적한 곳으로 나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도생활을 하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순간 순간 항상 하나님께 열려져 있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기도가 다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전통적인 교회냐 혹은 소위 영성사역을 하는 교회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이 두 가지 기도 중 한 가지만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들은 이 두 가지의 기도가 다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철저한 교제 가운데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셨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요한복음의 강조는 제자들에게 명하신 예수님의 명령에도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통해서만 참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예수님과 똑같은 삶을 살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중요한 두 구절
이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 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요한복음 14:10~12입니다.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구절입니까! 여기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께 민감하여 자신의 모든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관계를 통해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그것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제자들도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심지어 더 놀라운 사역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감격할 만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감당하셨던 것과 똑같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니요! 참으로 감탄하고 감격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구절은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것과,또 우리도 오직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러한 방법으로만이 이러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삶을 살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두 번째 중요한 구절은 요한복음 15장입니다. 그중에서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구절은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과 다른 곳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말씀을 우리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만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우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며, 예수님의 참다운 제자로 인정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요 15:8).
그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보여주셨고, 또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러한 방법으로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정확하게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시리라고 약속하고 계시고, 또 그 결과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성령이)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 16:14-l5).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러므로 만약 우리들이 오늘날 하나님께 민감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5. 예수님 사역의 정리
우리는 위에서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온전히 보려면,4복음서가 강조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강조점들을 다 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네 복음서의 강조점 모두 위에 우리의 사역이 세워져야 마치 네 기둥 위에 세워진 집처럼 든든할 것입니다.
복 음 서
예수님의 사역의 강조점
마가복음
선포(Proclamation)사역, 능력 행함(Demonstration)
마태복음
위에 꺼에다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임을 강조
누가복음
위에 꺼에다 그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의한 사역이었음을 강조
요한복음
위에 꺼에다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에서 나온 사역임을 강조
그런데 오늘날 일부에서는 심지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에 나오는 강조점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처럼 권세가 뒷받침되는 말씀을 강조하고, 그것을 위해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고 구하지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소홀히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친밀함 가운데서 사역을 감당하지 않고 임의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신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반면에 또 다른 일부에서는 예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 나라의 삶은 힘쓰되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힘쓰면, 능력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줄로 생각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들을 천박한 것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누가복음도 강조하기를 성령을 위해 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또한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고 갈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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