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리 신앙의 모든 면에서 핵심이요 필수입니다. 이 단원에서는 우리 신앙의 주요 부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무엇이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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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장 6절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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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영생,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우리 신앙의 본질이라고 부릅니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많은 희생과 의식이 있었습니다(사 1:11-15 참조, 참고로 호세아와 이사야는 같은 시대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이요 본질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떠나 있었습니다(호 4:1). 그 결과, 그들의 그 많은 의식들과 희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호 4:6),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호 6:1, 3).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성경은 영생을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의 올바른 의미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의 올바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 의미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실제로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예.
로마서 2장 17절에서 20절을 읽고,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당신의 말로 간단히 써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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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들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아십니까?”라고 물었더라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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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것과 관련하여,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요한복음 5:37-3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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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기에서 문제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
로마서는 서기 55년경에 사도 바울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하나님을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진리로 무장되어 있다고 자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한 빛이요, 영적 소경들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영적으로 어리석고 어린 자들을 위한 선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당신을 조롱하고 핍박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의 이 구절이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예수님 당시에서 불과 20년 남짓 후에 쓰여졌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오는 유대인들과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거의 같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기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이 이사야(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상태에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마 15:7, 요 12:9 참조).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차 몰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예를 들어 호세아 4장 6절을 읽을 때에도 그 구절이 자기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4장 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자기 조상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했지만, 자기들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눅 19:41-44), 자기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세아나 이사야서를 수없이 읽고, 또 그것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설교를 하면서도, 그 말씀이 자신들에게 해당되는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의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의 도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에 관해서 교리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성경적인 지식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의 조명으로만 가능합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안다는 말은 경험적으로 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부 관계를 ‘알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창 4:1).1,2
하나님을 아는 것이 포함하는 것들.
요한복음 5장 37절과 38절에서 예수님께서 기본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표현하시는 대신에 그들의 삶 속에 세 가지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세 가지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포함되는 것들입니다.
요한복음 5장 37절과 38절을 읽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포함되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 써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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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하나님의 형용을 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그분을 더욱 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포함됩니다.3
목자와 양의 비유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읽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그리고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신 가장 주된 이유 두 가지를 써보십시오.
(1) 14-15절:
(2) 3-4절, 16절, 27절:
위의 두 가지 모두를 위해 한 가지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입니까? ....................................
여기의 양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 신앙이 매우 좋은 일부 성도 □ 모든 성도
양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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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 때 이 하나님의 의도가 우리 삶 속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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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시 23: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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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신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갖기 원하시는 친밀한 교제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오늘날의 애완견처럼 길렀다고 합니다. 양들에게 이름을 주고, 그들과 말하고, 그들을 품에 안고 다니고, 심지어 그들을 방에서 함께 재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가지고 계신 친밀한 교제와 똑같은 교제를 우리와 갖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사랑의 교제가 얼마나 깊고 친밀한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그러한 교제를 갖기 원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목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예수님)의 의도를 담아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신 또 하나의 주된 이유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우리가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사역과도 관련된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은 이 두 부분 모두를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어서 필수입니다. 부부가 아무리 오랫동안 같이 살아도 서로 대화가 없으면 상대방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도 필수입니다. 4절은 우리가 하나님(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전제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16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이 더해져서 하나님을 위한 한 새 백성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목자로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은 많습니다.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알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 등. 그러나 양인 우리들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목자인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분을 알고, 앞서 가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의 양은 의심할 나위 없이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소위 신앙이 좋은 일부 성도나 목회자들이나 하루에 세 시간 이상씩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이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양의 삶을 살 수 있고, 또한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양인 우리가 생명을 얻되, 그것을 더욱 풍성히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풍성한 생명을 우리가 얻는 길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말하는 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자인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그분을 더욱 알고, 앞서가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단순히 영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구약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요한복음 10장이 말하는 양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편 23편에서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생명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시편은 단순히 그가 지어낸 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그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시편 23편 1절에서 6절을 읽고, 다윗이 하나님을 목자 삼고 양으로서 살아가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생명을 당신의 말로 열거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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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의 생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그러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만약 아니라면 당신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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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예
사무엘상 3장 7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사무엘이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당신은 생각하십니까?
☐ 사무엘이 여태까지 하나님에 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 사무엘이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몰랐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무엇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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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사무엘이 아직 하나님에 관해서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엘리 제사장 밑에서 자랐습니다. 뿐 만 아니라, 그 날 밤 마침내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되기 위해 성경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그 동안 엘리 제사장 밑에서 신앙적인 교육을 잘 받으면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그 날 밤 사무엘은 비로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인 하나님을 아는 것을 위해 필수입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이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말은 우리 신앙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바울, 베드로, 빌립 등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실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그들과 교제하시고, 실제적으로 그들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습니까? ......................................
반면에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막연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이 인격체시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어떠한 실제적인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격체이신 것을 믿지만, 실제 그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은 막연히 존재하는 어떤 강한 힘에 불과합니다.
1우리 말 성경에 “동침하매” 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에는 “알다.”라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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