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우리의 예배와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우리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예배를 받으시기에 홀로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영적 힘을 공급 받습니다. 예배를 통해 성령의 은사가 부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필수입니다.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기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우리 신앙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일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성막의 가장 주된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이해하셨습니다(마 21:13 참조).
출애굽기 40장 17절에서 38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표현은 무엇이며, 당신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또한 당신은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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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식양대로 다 완성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당신은 그 사건이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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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0장 1절과 2절에 의하면, 왜 나답과 아비후는 예배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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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혹은 그와 비슷한 표현이 귀찮으리만큼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그것을 통해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식양 그대로 성막을 지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게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의 성막을 완성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에 강하게 임하여, 심지어 제사장들이 서서 제사를 드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진정한 예배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준 혹은 방법을 따라 제사를 드리지 않음으로써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과 의식의 관계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올바른 예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리의 신앙의 본질과 의식의 관계를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이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1
1) 우리 신앙의 본질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우리의 전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2) 우리의 의식들은 본질을 담는 그릇으로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소중한 것들입니다.
3) 우리의 의식들은 중요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위한 수단들입니다.
4) 우리의 의식들은 수단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의식이 많아도 우리 삶 속에 본질이 없으면, 그 많은 의식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5) 우리는 의식들을 통해 우리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추구해야 합니다.
타락한 예배.
신앙의 타락과 예배의 타락.
우리 신앙의 타락과 예배의 타락은 항상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이 타락하면, 반드시 예배가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의 예배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다음의 세 시대는 신앙적으로 매우 타락했던 시대입니다. 그 세 시대 모두 그들의 예배가 어떻게 타락했는가를 써보십시오.
이사야 시대(사 29:13): ..........................................................................................................
예레미야 시대(렘 12:2) .........................................................................................................
예수님 시대(마 15:7-8) .........................................................................................................
세 시대 모두 종교적인 의식과 헌신이 매우 많은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신앙은 매우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세 시대 모두 그들의 예배가 철저하게 타락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예배의 특징.
위 세 구절을 다시 한 번 읽고, 타락한 예배의 공통적인 특징 두 가지를 써보십시오.
1) ..........................................................................................................................................
2) ..........................................................................................................................................
타락한 예배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마음이 없는 입술(모양)뿐인 예배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교훈에 기초한 예배입니다.
그 두 가지 특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당신의 생각을 써보십시오.
1) ............................................................................................................................................
2) ...........................................................................................................................................
우선 입술뿐인 예배 혹은 이사야 1장이 부르는 바와 같이 마당만 밟는 예배는 정성이 부족한 예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교적인 사고에서 나온 그릇된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예배를 보십시오. 그들은 모든 절기를 지켰고,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살진 짐승을 무수하게 드렸으며, 많이 기도했습니다(사 1:10-15 참조). 예레미야 시대에는 심지어 오늘날 인도에까지 가서 특별한 향료를 사다가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렘 6:20 참조). 그 시대는 비행기도 차도 없는 시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 시대 종교지도들, 특히 바리새인들의 예배를 잘 압니다. 정성과 희생과 헌신으로 따지면, 세 시대 모두 그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모두의 예배가 입술뿐인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입술뿐인 예배는 본질이 없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시대를 보면, 참으로 많은 희생과 예배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호세아서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호 4:1, 6; 6:1-3, 6 참조).2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멸시하여 떠나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 1:4 참조). 그리고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교훈에 기초한 예배의 대표적인 형태는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그릇된 이해와 의견에 기초한 예배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인 성경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 의미와 목적 그대로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아무리 자신들의 예배가 성경에 기초한 예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예배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그릇된 이해에 기초한 것이면,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사람의 의견에 기초한 예배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의 예배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잘 지키려고 철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는 요리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물건도 옮기지 않았으며, 심지어 침을 뱉어도 땅을 비비지 않았습니다. 땅을 비비는 것이 땅을 파는 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예배가 철저하게 성경에 기초하고 있고, 또 누구보다 예배를 잘 드린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식일에 대한, 더욱더 나아가 예배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의도와 의미와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란 말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그렇게 일로 생각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를 금하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는 일상의 일에서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더욱더 나아가 성전에서의 예배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정해진 규례대로 짐승의 제사를 드리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그것들도 중요했지만), 그 제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는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를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체, 제사 드리는 행위에만 집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지어 그 제사 행위를 위해 짐승을 팔아 많은 돈을 남겼고, 이방인의 뜰에서 짐승들을 팔므로 이방인들이 성전에 나오는 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채찍을 들어 성전에서 짐승들을 쫓아내시면서,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1:17).
이렇게 안식일과 예배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의도와 의미와 목적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예배는 실제로 성경이 아니라, 그 성경에 대한 그들과 그들 조상의 이해와 의견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예배는 사람의 교훈에 기초한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그들에게 오히려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 24:1-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 의미와 목적대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영적인 분별력이 필수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분별력은 신앙의 본질 가운데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반대로 아무리 종교적인 헌신과 의식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간절히 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집니다. 거기에다 종교적인 전통, 당시의 팽배한 신앙관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 등은 그 영적 분별력을 가리는데 일조합니다.3 바리새인들의 경우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다림줄을 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전통과 그 당시의 신앙관이 그들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마 15:3 참조). 그리고 그들의 분별력이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오히려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역을 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정해진 순서를 정성을 다해 정숙하게 마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원하는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예배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옳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틀리다고 생각합니까? 틀리면 왜 틀리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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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거짓 신앙체계에서 나온 그릇된 이해입니다. 우선 이러한 이해는 종교적인 행위나 의식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신임을 얻고자 하는 율법주의적인 사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수단 삼는 기복주의적인 이해입니다.
타락한 예배의 두 가지 특징과 관련하여, 당신의 교회의 예배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 교회의 예배에 그 두 가지 특징들이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 우리 교회의 예배에 그 두 가지 특징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 우리 교회의 예배에 그 두 가지 특징 중 일부가 나타나고 있다.
만약 당신 교회의 예배에 그 특징들이 나타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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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 교회의 예배에 그 두 가지 특징들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성도들이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결책 또한 하나님을 알고, 온 삶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구하는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시편 24장 1절에서 6절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십시오.
3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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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에 의하면, 예배를 드리러 나갈 때 우리는 무엇을 구하여 나가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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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가는 것에 관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예배를 드리러 나갈 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여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알아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하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방법과 길을 알아 그것에 순종하기를 구하여 나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을 기뻐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가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입니다.
예배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어느 날 집회를 인도하는 도중, 성령께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예배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세 가지 그릇된 자세에 대해서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 예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도록 가르친 것.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나오도록 인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구하여 나오도록 인도한 것.
● 예배를 인도하려고만 했지, 정작 자신은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
우리의 예배가 올바른 예배가 되려면, 예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예배 행위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배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기 때문에, 예배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손을 구하여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기도하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4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나 예배는 우리의 필요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철저하게 타락한 신앙이요,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실뿐 아니라, 채우십니다(마 6:33).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우리 신앙의 본질을 위한 수단이요,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때문에,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말은 우리의 예배가 외적으로 아무리 성대하다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다음의 세 가지로 전락하는 것을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막아야 합니다.
● 하나의 의식으로 전락하는 것.
● 하나의 습관으로 전락하는 것.
●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출애굽기 33장 3절과 14절을 대조하여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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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3장 15절과 16절에 의하면, 무엇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표시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천하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신 표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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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3장 1절에서 3절과 15절에 의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무엇보다 더 소중히 여겼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14절에서 우리 말 성경에 “내가 친히 가리라”는 말은 “내 임재가 함께 하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고유의 특권입니다.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과 천사의 도움 그리고 많은 적들로부터의 승리보다도 하나님의 임재가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필요한 어떠한 대가나 희생이라도 치룰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삶과 예배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예배와 성령
빌립보서 3장 3절은 참다운 신앙의 요소를 들면서, 예배의 어떤 부분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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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신앙의 요소 중 하나는 성령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 말 성경에 “봉사하며” 라고 번역된 단어는 “예배하며” 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영어 성경들이 다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배의 주관자는 성령이십니다. 시편만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려진 찬송이요 찬양이었는데, 그 모든 것들은 다 성령께서 감동하신 것이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것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에서 핵심인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 모두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예배의 한 특징은 즉흥성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예배 시간에 끊임없는 즉흥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예배에는 우리의 기대와 다른, 성령께서 주도하셔서 인도하시는 즉흥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예배 가운데 늘 “거룩한 무질서”가 있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로이드 죤스 목사도 하나님의 부흥의 때마다 예배 중에 “즉흥성” 요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예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원하시면, 나의 책 『거짓 신앙체계』(새물결출판사) 167-88쪽을 참조하십시오.
2참고로 이사야와 호세아는 같은 시대의 선지자들입니다.
3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원하시면, 나의 책 『영적 분별력』(새물결출판사)를 19장과 20장을 참조하십시오.
4사실 문맥적으로 볼 때 이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2단원/제1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에 대한 오해. (0) | 201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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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원/제5과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음성. (0) | 2010.04.23 |
1단원/제4과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0) | 2010.04.23 |
1단원/제2과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0) | 2010.04.23 |
1단원/제1과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0) | 2010.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