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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강 그리스도의 대사의 삶

시리즈설교/관계중심전도

by 발의무리 2011. 2. 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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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강 그리스도의 대사의 삶


고후5:17-21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은 복음을 실제적으로 전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필수인 그리스도의 대사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말합니다. 20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라고 말합니다. 영어NIV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 여러 나라의 대사들이 와 있습니다. 미국대사 영국대사 일본대사들이 와 있습니다. 이들은 그 나라 대통령을 대신하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의하면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대사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대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나가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다.’
그런 고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인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 시리즈를 살펴보면서 오스카 탐슨 박사의 책을 많이 인용하고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서 그분을 아주 귀하게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정확하게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당신은 그리스도를 대변합니다. 사무실에서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입니다. 교사이든 사업가이든 식료품 상인이든 당신은 그리스도의 대사인 것입니다. 당신이 가는 모든 곳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표합니다. 왜 이런 인식이 중요하냐면 우리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의 태도와 이기적인 행동과 사려 깊지 못한 행동방식 때문에 그리스도를 엉망으로 대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아니라 이것을 수시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일을 놀랍게 이루시려고 하는데 그것을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것은 전도에 관한 시리즈이기 때문에 지난주부터는 복음을 실제적으로 전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멘,.

자 그러면 그것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우리의 사역은 언제 시작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주님을 대표하는 일을 언제 시작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위한 우리의 사역을 우리가 다 준비된 다음에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학교 가서 공부하고 나중에 준비해서 복음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를 위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학교 가서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고 어떤 사람을 대학원에 가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어떤 사람들은 전도사로서 부목사로서 협력사역을 하며 일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단독사역을 하면 그제서야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역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틀립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학생이니까 지금은 공부하는 때라 생각하고 공부만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이제 좋은 직장에 갑니다. 결혼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노력합니다. 일정한 지위에 오르기까지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힘씁니다. 그리고 어떤 영향력 있는 지위에 오르면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살려고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열심히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주의 일에 힘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틀립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믿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사역을 언제부터 시작해야하는가?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오스카 탐슨 박사로 이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학생들이 와서 졸업하면 내 사역을 드디어 시작해야지요 라고 와서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때 아니요 당신은 직무는 오늘부터입니다. 일분도 허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사역을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과 사역을 오늘시작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평생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충실히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도와서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큰 일을 위해서 세우십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그렇게 충성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부터 출발하게 되시기를 바로 시작하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최고의 부르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부르심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스카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향한 최고의 부르심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부르심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 모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사역자이며 그리고 우리의 동심원안에서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제가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예인데, 우리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는가’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우리 신앙에서 핵심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입니다.’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not doing but being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하려면 신학교에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담을 많이 해보았거든요. 교회 지체들도 있지만 외부에서 많이 상당했습니다. 기도중에 하나님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그랬데요. 신학교를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나는 주를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신학교를 가야됩니까 안가도 됩니까? 이런 질문을 많이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에는 신학교를 가서 복음에 전적으로 드려져야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신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신학교를 가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결단이고 신학교를 가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가야할지를 묻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그럴 때마다 꼭 이렇게 답변합니다. 신학교를 가고 안가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신학교를 가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지금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박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포도나무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포도나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삶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의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의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학교 가고 안가고가 아니라 내가 지금 전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거하며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발견하고 온 삶으로 동참하며 사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상황에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나를 통해서 이루시기 시작하실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셨다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실 수 있고 그때 필요하면 얼마든지 신학도 공부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학교에 등록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결단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절대로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 자리에서 먼저 포도나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지금 그것이 그리스도의 대사의 삶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에서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른 말로 해서 포도나무의 삶을 살면 우리 모두는 사역자입니다. 우리의 관계의 동심원안에서 우리 모두는 다 사역자입니다. 다 그리스도의 지체요 다 그리스도의 가지입니다.

제가 탐슨박사의 말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특별한 인물이 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안에 거하셔서 당신을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내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나는 선교사나 설교자나 또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 가장 위대하고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사는 이들은 철물상이나 사업계나 교직에나 사업계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매일의 삶에 충실할 뿐입니다. 성령충만이 내성적인 사람을 외향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성령이 충만할 때 그들의 성격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품은 변화되어야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안에서 그분의 성격을 재생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즉 당신의 성격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성품 안에 그분의 인격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고의 부르심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포도나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3.우리의 매일의 생활양식은 그리스도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양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탐슨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강단에서는 유능한 전도자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에서 활발한 사람들 중에 나는 종업원이나 판매원에 대해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행동을 변명한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목격하겠습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것을 읽으면서 지난부에 2주동안 케냐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이로비 공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가 2년 전에 남아공 사역을 두차례나 했는데 그때는 안그랬는데 이번에 케냐를 가는데 학열병 주사를 맞아야 되고 주사맞은 증명서가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실 자매가 필리핀에 그것을 두고 왔어요. 그것이 없으면 못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실 자매가 필리핀에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팩스로 공항으로 보내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홍콩 까지만 티켓을 끊고 홍콩에서 남아공 남아공에서 나이로비까지는 홍콩에서 끊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항에서 일일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긴장을 했습니다. 거기서도 못들어 가면 어쩌나 했어요. 간을 졸이다가 들어갔어요. 들어갈 때 이민국에서도 또 보더라고요. 또 올 때 그것을 보는 것 있지요. 다른 사람은 다 가지고 있었는데 제 아내가 짐가방 속에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짐을 부친 상태입니다. 지금 이미 짐이 비행기 속에 들어가 있는데 그것을 꺼내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다가 따졌지요. 올 때 다 조사했지 않냐. 그런데 또 왜 조사하느냐? 따지다 보니까 언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결과는 직원하고 같이 가서 이민국 직원에게 여권을 맡기고 비행기있는 데까지 자서 짐을 열어 꺼내서 가지고 와서 보여주고 그랬습니다. 같이 못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와서 남아공에 와서 홍콩에 오는데 우리 뒤편에 한국 사람이 탔어요. 이 분들하고 이야기하는데 이분들이 남미로 사역을 다녀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성이 오가고 그래요. 가만히 보니까 모니터가 있는데 텔레비전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데 안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직원이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점도 있지요.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모르니까 잘 안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영어를 잘 하는 분입니다. 그러다가 붙었어요. 그래가지고 나한테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사실만 이야기하라고 하더라고요. 가만히 앉아서 듣다 보니까 그것이 내모습임을 보여줘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변하는데 제가 만일 공항에서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예수믿으라고 했다면 만약에 뒤에 있던 분이 그 스튜디어스에게 예수믿으라고 했다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를 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사로서의 삶을 살려면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인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가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자.’ 이것이 인식되어야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요.
이처럼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우리의 매일의 생활양식이 그리스도를 대변 혹은 대표해야하는데 여기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를 대표한다면 우리는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참을 것 참고 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여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력으로 하려고 하니까 항상 무거운 짐입니다. 상습적인 죄책감가운데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변한다는 말은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잃은 영혼들을 돌보고 상처당한 자들을 싸매고 치유하고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깨어진 관계들을 회복하도록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그분의 일을 하도록 우리가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고 그분께 삶을 드리고 허락함으로써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것이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포도나무의 삶을 삶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 가운데 있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그런 삶이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삶에서도 무엇을 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오스카 탐슨 박사는 심지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세계에 그리스도를 대변해야 합니다. 나의 예루살렘에서 나의 유다 나의 사마리아 나의 땅끝까지.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는 원수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역색 따라 지역감정이 있지요.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은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마리아까지 언급합니다.

그래서 탐슨 박사는 말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마음에서부터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지이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에 토대위에서 우리를 통해서 그들을 사랑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들의 필요를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돌보는 일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면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4.순종이 관건입니다.

지난주에도 나왔습니다만 순종이 관건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장애물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그것에 의해 패배를 당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의 삶에 실제로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요한복음 14장 21절을 적어서 암송하십시오. 나의 계명을 가지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당신에게 실제가 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몇 가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 신앙은 실제다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 신앙은 실제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우리 신앙은 실제다.’
제가 오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 부분을 묵상했습니다. 왜 묵상했는지 잘 몰라요. 제가 설교할 때 우리 신앙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나누어진 마음이 곧 우상숭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우리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목적이 되려면 우리의 목적이 다 내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합니다. 하나님께 봉사하고 나름대로 섬긴다 그것은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봉사하고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복도 주시고 우리의 사업도 잘되게 하시고 기도도 들어주고 좋은데 그것이 아니고 우리 목적 자체까지도 내려져야 하고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온 삶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려져야 한다고 설교하면 부담스러워 합니다. 여러분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이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런 부분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주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고 혹은 우리 주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를 보고 혹은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신가를 보고 그 일에 동참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전제하느냐면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고 계심이 전제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인 우리와 근본적으로 구별된 스스로 계시는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없으시는 전적으로 거룩하신 분입니다. 동시에 그분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또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최선입니다.
여러분 계명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라 우리에게 족쇄를 채우니까 우리가 부담스러워하지요. 그런데 계명을 왜 중요합니까? 그 놀라운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서 계명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유익을 중요합니다. 하나님인 이런 하나님일 뿐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성령을 통해서. 또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이신데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뿐아니라 실제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바꿔말하면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성령의 조명으로 개인적으로 실제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지금 하나님의 성품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언급했는데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실제적으로 안다면 그러면서 성경에 말하는데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열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만큼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드린대로 그래서 하나님은 이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이 신앙입니다. 기독교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실제입니다. 이 하나님을 실제로 아는 것이고 이 하나님을 실제로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지 오래되었고 교회에서 목사고 장로고 권사고 집사고 할지라도 그리고 주일날 빠지지 않고 예배 나오고 새벽기도 열심히 했을지 몰라도 성경이 말하는 실제이신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가운데 있지 않고 우리 삶에서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 신앙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겁데기 뿐인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그리스도의 사신의 삶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실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노력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실제이신 하나님이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신된 삶입니다. 그래서 이 실제를 성경적인 용어로 말하면 생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이처럼 우리 신앙은 실제입니다. 그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인식하지 못하니까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신앙을 몇 가지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전락시키고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합니다.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금하고 노력하면 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으로 인식하며 신앙생활합니다. 이것이 거짓신앙체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존재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설교하면 부담스럽지요. 이처럼 우리 신앙은 실제이되 실제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우리 신앙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고 전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같이 가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지요. 그래서 본문 요14장에서도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저를 사랑하여 저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순종하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아는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순종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는 순종할 것이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순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친밀한 교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과 실제적인 주권적인 통치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탐슨 박사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주관하십니까? 당신이 극복하지 못한 장애물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그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바를 자유롭게 하십니까? 당신의 삶안에서. 당신은 그분께 순종합니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삶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것이 타락의 본질입니다. 자기 목적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은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만 해도 내게 유익이 된 것만 순종하는 선별적인 순종을 하게 됩니다. 내게 손해가 예상되고 내 삶의 조정이 예상되면 적당히 넘어갑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못합니다. 순종하려면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우리 삶을 주고하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분의 발 앞에 내려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창조주요 계시자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주권적인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당신의 삶을 주관하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자유롭게 당신의 삶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이것이 되어지지 않으면 순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종교의 모양은 있어요.

또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과 관계에서 핵심일 뿐아니라 사람과 관계에서도 핵심입니다.
이것은 지난 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은 실제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토대위에서 모든 족속에게 가서 제자를 삼게 됩니다. 마태28장 19절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탐슨 박사가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만일 내년에 금년보다 만명에게 더 예수믿게 하고 세례를 주면 그분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몇 명이냐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세계에 보내신 우리 관계동심원안에 보내신 그들 모두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목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관계동심원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 케냐를 다녀왔고 이번에는 인도네시아를 갑니다. 우리가 케냐의 모든 사람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곳에만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관계의 동심원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우리가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인도네시아를 갑니다. 여러분은 안가지면 목사부부와 몇 성도들이 가니까 우리가 같이 가는 것과 같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이 가시니까 우리가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를 여러분 관계동심원 안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대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들중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케냐의 사람들도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포함되겠지만 그보다도 여러분의 관계 동심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여러분의 예루살렘에서 여러분의 유다에서 여러분의 사마리아에서 여러분의 땅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보내심을 받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 저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실제적으로 증거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오늘부터 대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인식하되 대사의 삶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 삶은 포도나무의 삶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신학교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해외선교에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포도나무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고 그 가운데서 신학교도 해외도 어느 것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된 삶을 기억하십시오. 이 삶을 살 때 한국에 나와있는 미국대사가 미국대통령이 위임한 권한 범위내에서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진 것처럼 우리가 이 삶을 살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되 성경에 말하는 모든 지혜와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우리삶에서 나타나심으로 우리 삶 속에서 지혜와 권세와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 삶 가운데 여러분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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