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관계의 다리를 놓자
고전 9:22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주일 낮 시간에 관계중심전도를 시리즈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제일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은 오스카 탐슨 박사를 초청해서 이 자리에서 설교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분은 하늘나라에 계시니까. 그래서 그분의 책을 함께 나누면서 저 자신도 이 부분을 더 배워나가고 싶고 우리 모든 지체들이 이 부분을 배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좀 옆으로 간 이야기인데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열정이 대단합니다.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위험 지역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가잖아요.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열정이 뛰어납니다. 과거 어느 기사를 보니까 외국기자에 대해서 한 단어로 표현했는데, 해쓸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서두르는 감도 있고 조급한 감도 있지만 활력이 뛰어나고 열정이 뛰어나고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단어입니다.
저희가 불과 2주전에 케냐에 다녀왔잖아요. 그래서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를 같이 갔던 분이 그래요. 우리는 한주만 따라가도 이렇게 힘든데 계속 해외사역을 하니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케냐가 1960년도 초에 우리 한국과 국민 소득이 비슷했습니다. GMP가 100불 정도되는, 그런데 지금 케냐는 1000불 정도됩니다. 한국은 만불이 거의 다 되지요. 제가 거기에 있는 비숍과 나누었더니 2000불이 아니고 2만불이냐고 묻더라고요. 우리 한국이 이처럼 발전한 것은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우리 민족의 해슬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역동성 헌신 이런 부분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제가 80년대 초에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 공부했더니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자라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 내적치유 때로는 영적인 억압들이 어떤 과목에서는 다루어졌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왜냐하면 우리 어려서 부모님들에게 맞고 자라기도 하고 심한 말을 듣기도 하며 삶의 한 부분으로 알고 자랐는데 상처를 받았느니 상처를 치유받아야 하느니 해서 우리하고 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꼈어요. 그런데 불과 몇 년에 안되었는데 우리나라 전체에 그 부분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우리도 눈 앞에 실제적으로 느끼는 거잖아요.
우리나라 일부에서는 자기 노력 별로 없이 갑자기 떼돈을 벌고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 돈을 가지고 함부로 쓰는 사람들을 질타하는 소리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체적으로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제가 듣는 바로는 필리핀을 보더라도 전에는 우리나라가 필리핀 같으면 살 수 있는 것이 구호였답니다. 그런데 지금 필리핀의 작년 통계를 보면 외국인 방문 중에서 1위가 한국사람이라고 합니다. 2위가 미국사람인데 2위보다 월등히 한국사람 방문객이 많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가서 그렇겠지만 지금 서서 지탄의 부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심있고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것은 귀한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우리가 배워보지 못했습니다. 거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자라면서부터 배우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섬기는 것을 우리는 거의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기독교인들 뿐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더 나가서 우리나라 전체에서 한 단계 더 나가려면 관계중심전도에서 살펴보는 것을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신앙인으로 더 나가서는 국가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이 부분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부분을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상처의 문제만 해도 지금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똑같이 느끼겠지만 저희 어렸을 때는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상처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상처는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조금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까 그 문제가 사회전체적으로 적나라하게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신앙인으로 또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반드시 배워야 할 요점이요 요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약한 옆으로 간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관계중심전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 동심원안에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사한 다음에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조사하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역을 실질적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제일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관계를 위해 다리를 놓은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왜? 관계라는 철로가 있어야 그 위로 사랑이라는 기차가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형성되어야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사랑도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됨으로 그들이 구원받고 치유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질적인 사역을 시작할 때 관계를 놓는 다리부터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가지를 봅니다.
1.관계를 위한 다리를 놓는 시기 2.접촉점의 활용. 3.깨어진 관계 가운데서도 관계를 위한 다리가 놓여져야 한다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광고 중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회를 보면 남편이나 아내는 믿음생활을 잘 하는데 배우자가 신앙이 없거나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아서 어려운 가정들이 있다. 이 경우에 각 전도회별로 관계중심전도 책에 나오는 SHAW팀처럼 집중적으로 그분들과 관계를 형성해서 그분들을 섬기는 팀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남녀전도회 회장단들 모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전도회별로 전도회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섬기기를 원하는 분들을 모집하니까 여러분 각 전도회별로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많이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도회 뿐아니라 우리 각자가 해야할 일인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잘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1.관계를 위한 다리를 놓는 시기
관계를 위한 다리를 놓는 시기에 대해 말하면서 탐슨 박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기쁨의 시기요 둘째는 슬픔의 시기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너희는 기뻐하는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쁨의 시기는 아이가 출생할 때 보통 폐쇄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는 그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산부인과 가보면 아이들 놓여있는 모습 보았지요. 아이들을 보시면 알지만 예쁜 아이들도 있지만 못생긴 아이들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세 명 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낳았어요. 가보면 미국 아이들은 머리로 없이 태어나요. 또 이목구비로 뚜렷합니다. 그런데 동양 아이들을 보면 새까만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고 눈은 쭉 찢어지고 꼭 원숭이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못생긴 아이여도 부모의 눈에는 그 아이처럼 예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쁜 때에 그 예쁜 아이를 바라보면 같이 기뻐하는 것 관심을 표명하는 것 축하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들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또 하나의 기쁨의 기간은 결혼입니다. 오늘도 광고가 나갔습니다만 이번 달에는 포도나무 지체들 중에 많은 가정에서 결혼식이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두 군데나 있고요. 이런 기쁨의 날에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축하하는 것,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니까 약한 옆으로 간 이야기입니다만 오스카 탐슨 박사는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결혼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결혼해야 할 분들도 있고 이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스카 탐슨 박사는 결혼의 가장 핵심은 친밀함이라고 말합니다. 친밀함의 관점에서 결혼해서 중요한 요소 세 가지를 말합니다. 우리가 친밀함은 육체적인 친밀함 성적인 관계를 떠올리는데 친밀함은 그 이상입니다. 성공적인 결혼을 위한 성경적인 관점에서 세 가지 친밀함을 말합니다.
첫째 정신적 정서적 지적인 친밀함이다.
따라서 합시다. ‘정신적 정서적 지적인 친밀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나라는 열정이 뛰어납니다. 귀합니다. 그런데 소중한 상대를 배려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상대를 섬기는 법을 잘못 배웠습니다. 결혼만 해도 친구는 친구는 다 대려와서 집에 있는 것 다 나눠주고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면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잔뜩 받으면서 정작 자기 아내와 자녀들에게는 전혀 친밀하지 못한 경우가 그동안 너무나 적지 않았어요. 왜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올바른 관계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처와 심적인 환경적인 고통을 당하는가를 조금도 고려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결혼해서 친밀함의 관점에서 핵심중에 하나가 정서적 정신적 지적인 친밀함이라는 말은 남편이 혹은 아내가 이 지구상에서 자기 배우자와 가장 친한 관계를 유지해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보다 다른 사람을 더 가까이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보다 다른 사람을 더 신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더 여러분의 내면세계나 여러분의 생각이나 고민이나 철학을 더 깊이 다른 사람과 나눈다면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좀 제가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좋을 수도 있는데 어떤 분들은 자기 배우자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을 교회에 와서 다른 성도들을 통해서 목회자를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보다 친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더 친하다면 결혼이 문제가 시작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 면에서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스카 탐슨 박사는 말합니다. 대화부터 시작하십시오. 모든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십시오. 분노와 교만한 태도를 내려놓으십시오. 저는 이렇게 주변에서 가끔 부부 사이에서도 자기 속이야기를 못나누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여러분의 결혼이 친밀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분의 깊은 상처와 고민까지 여러분의 깊은 생각까지 다 여러분의 배우자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중요한 친밀함은 당연히 영적인 친밀함입니다.
우리는 영적존재입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와 하나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삼각형입니다. 남자 여자 하나님. 제가 주례할 때도 가끔 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래서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삼각형처럼 하나님과 친밀함 안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튼튼한 결혼입니다. 삼각형에서 꼭지점을 향해 나갈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이 남자를 통해서 여자에게로 흘러가고 하나님의 사랑이 여자를 통해서 남자에게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 용서하며 돌보며 보살피며 구속적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요. 이런 하나님과 친밀함의 토대 위에서 세워지지 않으면 다 자기 위주입니다. 상대방도 나를 위해 존재하고 상대방도 나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고 그래서 오늘날 많은 결혼생활에서 보는 것처럼 당신이 내 필요를 채워주고 당신이 내게 도움에 되고 내게 유익이 되는 한 내가 당신과 살아줄게 그러지요. 그래서 돈도 많고 건강하고 내게 쓸만할 때 내가 살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육체적인 친밀함입니다.
여기에서도 정서적 친밀함 영적인 친밀함이 같이 가야 육체적 친밀함도 같이 따라옵니다. 정서적 친밀함 영적 친밀함이 없이 육체적인 친밀함만 추구한다면 거기에는 친밀함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인 친밀함을 얻기 위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경우 계속해서 두 번 세 번 결혼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말씀드린대로 위의 두 친밀함이 없는 한 육체적 친밀함에서도 절대로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에 대한 그릇된 이유 때문에 육체적 친밀함을 소홀이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처음 목회할 때 안믿는 남편이 예배중에 들어와서 아내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가고 문을 꽝꽝 두드리기도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설교하다가 그때 교회성도가 많은 경우도 아니고 언제 들어올지 몰라서 마음이 두근거리며 예배드렸던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그분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 당장 그 아내가 어려움을 당하는데. 그런데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서 상당하는 과정에서 그분이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왜냐하면 그것을 신앙적으로 부부사이의 관계를 더러운 것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제가 말했지요. 성경에 보면 남편의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하라고 했고 아내의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부부 사이에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한 동의가 있더라도 짧은 시간만 동의하더라도 영적인 문제에 한해서 분방하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분방하려면 조건이 있는데 영적인 문제에 한해서 서로 동의하에 분방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부분은 나누면서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그 다음부터는 남편이 한번도 교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친밀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와같이 정신적 정서적 지적인 친밀함 영적인 친밀함 육체적 친밀함이 어울러지는 가장 친밀한 하나님안에서의 관계가 결혼생활입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민족이 이렇게 진짜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다. 그런데 이런 것 같아요. 제가 80년대 초에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깜짝 놀란 것이 미국에서 결혼하면 반은 이혼했어요. 이혼률이 50%였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이혼률이 아주 낮았지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낯설지만 이럴 수가 있냐고 했어요. 그런데 불과 얼마 안되었는데 우리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이혼룔이 높아졌어요. 여기 결혼 친밀함만 해도 탐슨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흔히 젊은이들은 육체적인 친밀함으로 출발합니다. 얼마 후에 그들은 육체적인 친밀함을 통해서 만족하지 못함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여러번 육체적 관계에 들어가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성취감을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두 사람 사이에 친밀한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제가 80년대 미국에 갈 때만 해도 한국 같은 경우에 고등학생들이건 다른 사회 전반적으로 죄에 노출되는 것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성적인 면만해도 우리나라가 어느 서구사회 못지않게 급속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통로를 통해서.
지금 부모님들이 젊은이들은 지방대학에 안보낸다고 합니다. 대학생들 신입생들 사이에 동거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어요.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타락한 것이 많습니다. 동시에 우리나라 케이블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이 미국의 텔레비전에서 절대 못나오게 된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개방되기는 했는데 무조건 외국의 어떤 것들을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기준도 없이 가치관도 없이 받아들이면서 짧은 시간에 다른 나라에서는 수백년에 걸쳐 얻은 변화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짧은 시간에 와서 모든 부분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만 해도 가장 먼저 우리에게 찾아온 부로 인해서 의시되면서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과 서구의 안좋은 부분이 전체인 냥 배워서 따라가는 가치관을 버리고 우리부터 가장 핵심적인 믿음가운에서 진정한 올바른 관계와 섬김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부분에서부터 배우고 자라나야 합니다.
기쁨의 시기 출생 결혼 그 외에도 많습니다. 승진 감사 졸업 생일 기념일 등등. 생일만 해도 생일카드를 보내는 것도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생일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교사들이여 당신의 학생들과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원한다면 생일은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들에게 생일카드를 보내십시오. 사업의 동료들 고용인들 직장동료들에게 생일카드를 보낼 것을 권면합니다.
좋은 예가 하나가 있습니다. 오스카 탐슨 박사가 처음 목회할 때 시골에서 했나봐요. 시골에 도로가 포장이 안되서 돌이 굴러다니고 먼지가 많고 그 지역에는 연세드신 분들이 많이 살았답니다. 이쪽으로 열두 불럭 이쪽으로 네 블럭을 포장해 달라고 시에 민원을 냅니다. 그래서 싸인을 받는데 사람들이 안될 것이라고 하는데 앞서 가지고 때로는 수십 마일 떨어진 자기 친척들까지 싸인을 해주고 사람들이 싸인을 해주고 드디어 시에서 포장을 해주었답니다. 포장을 해주는데 포장하는 책임자 이름이 거스라는 분이었습니다. 그 아내는 일할 때 점심을 싸다가 남편 대접하고 목사님의 어머니는 과일 종종 일하는 사람들 대접하고 포장을 했답니다. 지금 이런 부분을 우리가 배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포장이 끝난 다음에 이분이 거스에게 감사의 편지를 장문으로 쓴 것입니다. 참고로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거스를 만난적이 없답니다. 장문의 감사장을 썼는데 그분과 일꾼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 살기좋게 되었는지를 썼답니다. 하루는 그 아내가 목사님이 차를 타고 가는데 차를 세워서 섰는데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더래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남편 거스가 지금까지 시를 위해서 일해왔는데 한번도 그렇게 감사편지를 받은 적이 없답니다. 그래서 감사편지를 받고 읽으면서 울고 읽으면서 울고 했답니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부터 두 분이 교회를 나왔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후 6개월 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온 가족이 구원받는데 촉매제가 무엇이었냐면 감사장을 보낸 것입니다.
중심에서부터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 내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어요. 이렇게 기쁜 일들이 다리를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될 뿐아니라 슬픈 일들 아플 때 입원할 때 수술할 때 경제적인 파단 실직, 결혼생활의 위기 자녀와 갈등 등등의 때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팀들도 지체들이 수술을 받을 때 아침 일찍부터 가서 수술받는 동안 내내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기도하고 위로하고 이것이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 몇주 동안은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때 같이 있어 주는 것만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들에게는 뭔가 자기들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탐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환자들이나 이런 분들에게 갈 때 금기사항이 있다. 하나는 그 사람들의 얼굴이 형편없다고 말하지 말라. 또 하나는 똑같은 명을 앓은 사람이 낫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또 하나는 얼굴이 안좋은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상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 여러분이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잘 배워야 합니다. 아무 것도 몰라서 위로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상처를 주고 올 수 있습니다. 위로하러 가서 자기 일을 자기 문제들을 실컷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문제들을 쏟아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야 할 것으로는. 승리의 삶을 간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격려하라. 그 환자가 관심을 가지는 내용을 말하라. 짧은 시간만 머물라. 몇 가지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귀하게 그 시간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상대방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있으면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한 아이가 갑자기 약을 마셨어요. 조금만 입에 대로 살아남지 못할 약을 한 병을 다 마셔버렸습니다. 그런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급히 병원에 실려가서 하루 이상을 견뎠어요. 살아나지 못할 강한 독인데 그럼에도 같이 있으면서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인도하고 장례식에서 온 가족들이 구원받았어요. 지금도 그분들 신앙생활 잘하고 있어요. 또 다른 경우에 간단히 치유받으면 될 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살펴보니까 암말기입니다. 그래서 수술 못하고 그냥 닫아버린 것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완전히 불교신자입니다. 절에다 그 많은 돈을 갖다 헌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로부터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일년 정도를 신앙생활을 잘 했어요. 믿음안에 있다가 주의 품에 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같이 있으면서 위로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주변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그런 계기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2.접촉점의 활용
이렇게 상대방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건들을 접촉점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접촉점을 우리가 활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1)관계의 다리를 놓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이고 2)접촉점이 없으면 만들고 3)모든 접촉점을 다 활용해라는 것입니다.
1)관계의 다리를 놓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이다.
탐슨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관계의 다리를 놓은 일은 계속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당신이 생활양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제가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공항에 가면 책자를 나누어줍니다. 몇 쪽밖에 안되는 소책자입니다. 그러나 안보지요. 왜냐하면 그 책자들은 대부분은 종교단체들이 나누어 주는 것들입니다. 자기들의 목적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단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친구가 두꺼운 책을 주면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훨씬 두꺼운 것이라도 사랑하는 친구가 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접촉점을 활용해서 관계를 유지하되 그 사람 한번 교회 데리고 와서 등록시키고 교회 성도 늘리기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그거요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수단 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삶의 패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생명 넘치는 삶을 살도록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삶의 패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활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관계의 다리를 놓는 일이 우리의 생활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자주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름표를 차세요. 이름표를 보시고 옆에 있는 분하고 인사하세요. 관심을 갖기 시작해야 상대방의 필요도 보이고 더 많은 것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너무나 작은 일 같지만 절대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드린대로 열심히 있지만 자기를 위해 사는데 자기 목표를 위해 사는데 열심히 있습니다. 교회만 해도 우리의 목표를 내세우고 상대방을 희생하면서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사고방식에 너무나 우리는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부분들을 잘 못배웠습니다. 우리 삶 속에 예외적으로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 삶 속에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새벽기도 한번도 안빠지고 금식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 속에도 이것이 없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데 기독교인으로서 너무나 소중한 부분입니다. 이것을 가장 가까운 분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배워져야 삶이 나옵니다. 이것이하나의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패턴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 부분 관계중심전도가 전도 뿐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해당됩니다. 이런 태도 위에서 성령의 사역이 같이 갑니다. 선교도 이런 자세가 없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배우기 원하고 여러분이 더 배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패턴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생일카드를 보내는 것이 있다면 생일카드를 보내는 것은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리를 놓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좋은 예가 있습니다. 탐슨 박사님 친구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답니다. 우리가 이런 삶의 가치와 패턴이 우리 삶 속에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친구가 집에 왔더니 아버지가 모르스 부호판을 연습하고 있더래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빠는 햄에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것을 연습하고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래 관심이 없지 그런데 저 길 아래 쪽에 사는 그레그 스미스 씨 있잖아. 집에 큰 안테나가 있는 집 그분. 그런데 그분에게 교제의 손을 뻗치려고 노력하는데 그분은 나에게 무관심해. 그분의 유일한 관심은 햄 라이오야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햄 라디오 기사가 되어서 그분에게 접근하려고 해. 그래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레그 씨와 교제를 트는데 몇 개월이 걸렸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몇 개월 후에 그레그씨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접촉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전도회별로 전도특공대를 만들자고 했는데 그렇게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필요를 보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사랑을 하기 위해 어떻게 그들에게 접근해 갈까 고민하는 가운데 때로는 접촉점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라도 접근해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벽기도 중요합니다. 너무나도. 금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의식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위한 수단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으면 상대방을 섬기는 것으로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모든 접촉점을 활용하라고 했잖아요.
한번은 탐슨 박사님이 유대인을 만난 적이 있답니다. 모텔용 가구를 판매하는 직원을 만났는데 유대인이랍니다. 휴스턴에 계실 때 만나서 서로 인사하는데 서로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합니까? 저는 침례교 목사입니다. 그랬더니 자신은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유대인이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을 닫잖아요. 그랬더니 휴스턴에서 임시목사로 있을 때인데 목사님이 그랬답니다. 나도 유대인인데요. 그랬더니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묻더래요. 어느 지파십니까? 청년이 유대인은 알지만 지파는 모르잖아요. 머뭇거리다 나는 유다 지파인데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지파로 오신 주님의 제자들이잖아요. 새 이스라엘. 아직 뭘 모르셨구나. 그러면서 다음 주에 좀더 이야기합시다. 다음주까지 어느 지파인지 알아두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서 관계를 갖는 자세를 말합니다.
3.깨어진 관계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려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 속에 합당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기 시작하시려면 여러분 속에 있는 장벽들을 만지십니다. 그것을 무너뜨려야 되니까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아파하고 회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기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려면 여러분 속에 있는 장벽들을 건드리신다니까요?
한번은 제리 크레익이라는 분의 가정을 방문했답니다.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는. 목사님과 사모님과 그 부부와 심방하면서 대화하는 중에 제리라는 성도가 예수믿은지 얼마 안되는데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전도하고 싶고 첫사랑에 부풀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고민을 목사님께 조용하게 털어놓은 것입니다. 목사님이 그래서 대화하면서 하나씩 인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타오르는 불처럼 열정적이다가 조금 있다가 식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려다가 힘이 빠져버리면 안되지요.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면요 그래서 제가 고민입니다고 말하더랍니다. 하나님이 어떨 때는 어렸을 때는 묵과하시지만 성숙해가면서 다루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형제님 죄를 지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하나님 앞에 큰 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혹시 용서하지 못한 마음 상대방에 대해서 좋지 않는 마음 가진 적 있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과거에는요? 가만히 생각해보더니 있었어요 제가 작은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아버지와 사업을 하다 사업이 잘되니까 아버지를 몰아내고 혼자 부자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먹고는 살지만 그것 때문에 미워했어요. 지금도 그러나요? 예 지금도 그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실 때 처음 예수 믿을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서 기쁨과 감격이 있지만 다루시게 되면 드러내십니다.
우리 형편을 따라 하나님이 다루십니다. 한꺼번에 다루시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없지요. 그랬더니 정답을 너무나 잘 알지요. 예수님을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용서하셔야 합니다. 알겠다고 대답하자 같이 용서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것을 회개하고 당연히 작은 아버지를 축복하고 했습니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형제님이 작은 아버지에 대해서 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예 지금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형제님이 편지를 쓰겠데요. 그래서 제리라는 성도가 작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어요.
그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삼촌 밴 여러 해 동안 저는 삼촌을 향하여 마음 속에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가진 후로 저의 삶은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삼촌께 대한 태도에 마음 아파하십니다. 삼촌 저의 나빴던 태도를 용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분도 여기서 설명을 했지만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제리가 편지를 쓸때 삼촌이 자기에게 한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화해할 때 상대방의 잘못을 들춘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기분 나빴습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삼촌 그렇지만 내가 용서합니다. 이것은 싸우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과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부분만 하면 됩니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잘못되었지만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가진 것은 잘못된 것이거든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상대방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그 부분을 회개하고 그분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편지를 보냈더니 즉각적으로 답장이 왔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편지가 왔습니다. 그래 제리야 나는 수년간 몹시 마음이 상해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어. 네가 그리스도와 관계를 갖는 것이 몹시 흥미롭구나. 내게도 관심이 있구나. 그래서 제리는 그 후로 목사님과 헤어진 후로 편지를 받은 후로 어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삼촌의 생일을 알고 생일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기쁨으로 답장이 왔더래요. 크리스마스 때에 성경책을 보냈데요. 보세요 관계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답장이 안오더랍니다. 2월이 되었는데도 답장이 안오더랍니다. 그래서 탐슨 박사가 그분에게 삼촌에게 답장이 왔나요 그랬더니 아니요 연락이 없습니다.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2월중순쯤에 그분이 찾아와서 목사님에게 그러더랍니다. 목사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오늘 밴 아저씨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편지에 이렇게 써 있었어요. 사랑하는 제리 보내준 성경책 고마웠다. 감사의 편지가 너무 늦었구나 실은 먼저 성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너도 이 사실을 알면 매우 기뻐할거야. 나는 성경을 읽고 너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 속에 모셔들였다.
그러니까 우리 관계의 동심원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우리와 올바른 관계안에 있지 못한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세리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통해 역사하심으로 관계가 회복될 뿐아니라 하나님께로 그들도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 어떻게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어떻게 관계를 위한 다리를 놓을 것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토대 위에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원하고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관계가 만들어져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통해서 관계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벌써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오이코스 보고서를 보면 한분 한분의 지체 속에서 하나님이 벌써 일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우리가 더 삶의 패턴이 되어져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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