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유업(2)
* 본문말씀 : 로마서 8:14~17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이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유업 열방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편 2편은 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합니다. 왕으로 오실 메시야입니다. ‘너는’은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말은 엄마가 아들을 낳은것처럼 하나님이 예수님을 뱃속에서 낳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써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이말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웠다는 말입니다.
8절을 보면 열방을 구하라 그러면 열방을 주리라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때에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때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예수님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랬고, 주변에 들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합니다. 이 말속에는 배후에 두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이말은 시편2:7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은 이사야 40:1 종으로 오실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메시야 종으로 오실 메시야로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데, 그분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신겁니다.
성경에 보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4가지 형태로 나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 종으로 오게 되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왕과 종은 같이 갈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 모든 예언을 성취한 겁니다.
그래서 구약의 약속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신약의 성취를 보아야 올바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성경해석의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는 신약을 토대로 구약을 이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을 토요일날 지키지 않습니다. 주일이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로서 구약의 모든 안식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2편에 보면 왕으로 오신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는 구절인데, 여기에 보아도 알수있듯이 예수님에게 주신 하나님의 유업의 한 핵심이 열방입니다. 이 구절에만 나와 있는게 아닙니다. 이사야서 하반부에는 고난의 종으로서 오실 메시야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하반부 40장부터 66장까지를 구약의 신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이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되어있습니다. 이사야서가 총 66장입니다. 전반부가 39장, 후반부가 27장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처음에 침례요한의 예언부터 시작합니다. 이사야서 40:1절 부터 보시면 침례요한의 예언부터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 22장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끝납니다. 이사야서 65장, 66장은 새하늘과 새땅에 관한겁니다. 신약에는 복음서가 4개(마태, 마가, 누가, 요한) 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하반부에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노래라고 하는 구절이, 학자들이 말하는데로 4개가 있습니다. 복음서를 빼놓고도 예수님의 구속을 알수 있을만큼, 이사야 하반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어느 성경 못지않게 많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중의 대표적인 구절이 이사야서 53장입니다.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만 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있었던게 이사야서 53장입니다. 그것을 빌립이 설명해 주면서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늘날 까지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발견하는데 하나님이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데가 이사야서 53장입니다. 이처럼 이사야 하반부는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언합니다.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노래하는 구절인 42장과 49장이 포함되는데, 거기에 보면 예수님에게 주신 유업이 열방인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사야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이사야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2.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 열방.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이 말은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행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 내용은 사도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두 번째 주에는 온 도시가 함께할 정도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비방하고 공격하고 외곡시키고 험담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해서 당신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당신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치않기로 자처함으로 내가 이방인에게로 간다 ’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사야 49:6 말씀입니다. 예수님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종의 한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메시야에게 주신 유업입니다. 그런데 이 유업을 예수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으로 상속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유업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열한제자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 전체를 가리킵니다. 오늘날도 구약을 세 개로 나눕니다.(율법, 선지서, 시가서) 모든 구약은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구약성경의 근간, 기초, 핵심, 본질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예수님에 관한 모든 예언이 이루어질것이라고 말합니다.
*눅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여기에 보면 구약에 나오는 예수님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 하나는 부활.
구약의 근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예언의 한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이사야서 53장만 십자가가 예언된 것이 아니라. 구약의 제사행위 모든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히13장 속죄제에 대해 말하면서 예수님이 성문밖에서 십자가를 지신것도,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고전 15장에서 복음에 대해서 말하면서 ‘내가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예언한대로,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성경대로란 말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 그대로 그 십자가를 통해 성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또한 성경대로 부활하셨다는데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성경에서 말한 그것을 그대로 의미하여 성취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사 우리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이 두가지는 성취되었습니다. 나머지 하나가 반듯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러 전파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전파되느냐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셨는데, 그 유업이 예수님에게 드려지기 위해서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 될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21장에 보면 말세에 대한 징조들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빼고요. 거기에 보면 말세의 징조중의 하나가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리니 그때에야 비로소 끝이 오리라고 말했습니다. 끝이 오기전에 땅끝까지 증거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 유업이 예수님께 드려지되 우리를 통해서 드려진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이 오순절날 임하고 그들이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하기를 시작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보아도 명백하게 알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유업의 한 핵심이 열방인데요. 그 유업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입니다. 실제적으로 이 유업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3. 십자가의 복음에 서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미 살펴본대로 신앙의 본질가운데 거할 때 유업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우리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과 같이가는게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에 우리의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이것도 포함되지만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갈 때 오직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삶, 은혜에 의한 삶, 믿음에 의한 삶, 성령에 의한 삶,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의 삶입니다.
이 삶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유업이 우리가운데서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습니다. 인류의 구속에 대한 예언이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궁극적인 해방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유업중의 하나인 열방을 얻게 될것라는 겁니다.
성경은 비유적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 경우는 사도바울이 예외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한겁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있었는데, 이삭은 정실부인 사라에게서 낳았고, 이스마엘은 몸종이었던 하갈에게서 낳았습니다. 이삭을 십자가의 복음에 비유하고 있고, 이스마엘을 갈라디아교회, 초대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던, 거짓 사도들에게서 전파된 율법주의적인 가치관(거짓 신앙체계)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갈4: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사야 54장 1절의 말씀입니다.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육체를 따라 난 자’는 이스마엘을 말합니다. 사도바울 당시는 거짓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성령을 따라 난 자’는 아브라함 때는 이삭을 가리키고 사도바울 때는 십자가 복음을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적인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들을 핍박한 것처럼 이제도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그당시에,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을 받느냐? 믿음만 가지고는 안된다. 추가로 할례를 받아야 진정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고 가르칠지 모르지만 할례와 같은 종교적인 의식을 행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믿음을 강조하여도 결국 그로하여금 구원받게하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게 하는게 종교적인 행위 할례입니다. 행위를 의지해서 하나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타락한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개들, 행악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행하면 왜 핍박을 받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당시 대다수의 교회가 그렇게 가르쳤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소수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내가 그렇게 가르쳤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십자가의 능력은 소멸되었을 거라는 겁니다. 그들은 돌이키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갈4: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이말은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수 없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쫒아낸것처럼 너희에게서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을 쫒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약속의 자녀, 복음의 자녀이므로 율법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하여 서는 삶으로 돌이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편지하면서 내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하느냐,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말하고 있는겁니다.
이 유업은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설 때 주어지고, 다른 말로 십자가의 복음에 설 때 주어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이 주신 유업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공동상속자로서 열방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식하셔야 됩니다. 자기의 본분을 인식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인식하지 못하면 삶의 목표가 흐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과 우리의 관점은 다릅니다.
세상적인 어떠한 관점에 있든지 그것이 여러분을 좌우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경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부어주셔서 마음눈을 밝혀주심으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유업 열방, 하나님께서 얼마나 소중한 유업을 주셨는지를 볼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