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들의 유업(4)

시리즈설교/하나님의유업과본질

by 발의무리 2017. 8. 12. 19:46

본문

아들의 유업(4)

 

로마서 8:15~17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이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 아버지의 일에 동참하는 특권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특권중의 하나가 아버지의 일에 동참하는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일에 동참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델이십니다. 로마서 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빚어가신다고 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5:17,19~20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여기보시면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오늘까지 일하신다 나도 일한다하시면서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 하지 않는다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나도 행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행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이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모든 일들을 아버지의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일이 어떠한 관계에서 나왔냐면,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신, 친밀한 교제를 말합니다. 이 관계에서 이 일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와같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아버지의 일이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일을 행하고 그것을 마치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식이라는 말은 오늘날로 말하면 밥이라는 말입니다. 4:34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수가성 우물가에서 물 길러온 여인에게 복음을 전한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있는 갈릴리 지역을 갈려면 그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상종이 없기 때문에요. 유대인들은 요단강 동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요단강을 건너가 갈릴리 지역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서 가셨습니다. 가다가 수가성이라는 지역에서 낮 12시에 물길러 온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동안 다섯 남자와 살았는데 지금 사는 여섯 번째도 남편이 아닌 그런 여자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지역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사람들은 낮에 물길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도 오지않는 그 시간에 물길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이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되는, 그 기쁨이 넘쳐서 이 여인이 물길러 왔다가 물길러 온것도 잊어먹고, 그렇게 사람들을 피하고 살았는데, 동네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한 모든 일들을 내게 말한 분 얘기를 들어보라, 그러면서 증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온 사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여인이 동네로 들어갔을 때 그 시점에서 음식을 구해온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요 5: 19절의 말씀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다음에 한 말씀입니다. 그 당시 베데스다 연못에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물이 가끔한번 동하는데, 물이 동하는 것은 천사가 내려왔다는 표시이고, 이때에 어떤 병을 가졌든지 그 물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된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그 주위에는 수많은 중환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거기를 예수님이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지나시다가 예수님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 요한복음 5: 2~16절 참조

안식일은 일하지 말라고 했는데, 38년된 병자가 메트를 들고 가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예수님을 대적한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하신 말씀이 아버지께서 오늘까지 일하신다. 나도 일한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이 일만 하더라도 예수님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아버지의 행하심을 본다 그것을 나도 행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보이신다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다섯 남편과 살다가 여섯 번째와 사는 그 여인, 동네 사람들은 못볼 것처럼 그 사람을 왕따 시키는 그 여인을 건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것도 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받을 뿐만아니라 그 결과로 사마리아 전체가 복음을 듣게 되고, 나중에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온 사마리아가 예수를 믿고 기쁨이 충만했는데, 그 기초가 이미 이때부터 놓여졌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모든일이 아버지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는 그 삶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통해서 동참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계획하신 바가 성취됩니다. 그래서 그 일이야 말로 특권입니다.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행하심에 동참하도록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행하심을 보이셨다고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능한데, 우리도 그게 가능하냐는 겁니다. 그게 정확하게 성경이 그렇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로 하여금 열매맺는 삶을 살게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알리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실텐데, 예수님의 것은 곧 아버지의 것이라. 성령이 우리에게 아버지의 행하실 것을 알리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아버지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삶을 살도록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2. 동역자의 삶을 통해.

신앙의 본질의 삶을 통해 이 일이 이루어집니다. 신앙의 본질은 신앙의 핵,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우리 신앙의 모든 것, 이렇게 표현할수 있는 것을 본질이라고 하는데, 두가지 요소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둘째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있는, 친밀한 교제를 말합니다. 이 관계에서 아버지의 일을 행하시는 이 모든게 나왔다는 겁니다.

5장 아버지가 오늘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 나는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본다. 그것을 나도 행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행하신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이신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 이게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도 무엇보다 아버지의 친밀한 교제가운데 거하셨고, 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삶입니다. 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게 아버지의 일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사역이 이렇다라고 강조한 대로 제자들에게 똑같이 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너희도 그렇게 살라고 합니다.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안에, 정확하게 친밀한 교제를 가리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말은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 나는 아버지가 행하심을 본다 그것을 나도 행한다. 이 두가지 요소가 우리가 살아야할 삶입니다. 이때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포도나무요 그랬습니다. 나무가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열립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 여인을 하나님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은 못난자를 들어 쓰신다고 했잖아요. 잘난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복음화시키는데, 쓰실 사람이 없어서 그런 사람을 쓰시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를 거니시다가 병자를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38년된 병자를 고치신겁니다. 이게 하나의 열매입니다.

포도나무의 비유를 든 것은 우리의 삶속에 이런 열매가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라.

바울을 전도한 아나니아를 보면, 아나니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으면서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오셔서 계획을 알리셨을 때 아나니아의 생각에는 어리석은 일 같았지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그분의 인도를 분명하게 분별할수 있었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믿음으로 나가 순종하므로 사울의 몸에 손을 얻고 기도했더니 비늘이 떨어지고 성령이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침례를 받게 된 겁니다. 나중에 사도중의 사도인 바울이 된겁니다. 이건 이 삶을 통해서 맺어진 하나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때 열매가 컸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복음을 전한거요. 그 여인이 구원받는 것도 하나의 열매입니다. 이 한사건을 통해 사마리아 전체가 복음을 듣습니다. 그 당시에는 안받아 들입니다.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인데, 나중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성령이 임하시고, 핍박이 오니까 사도들 외에는 다 흩어지게 되는데, 그중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사마리아 전체가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이 사마리아 성 전체에 충만했다고 성경에 써있는데, 이 역사의 전초적인 역사가 이미 놓인겁니다. 하나의 열매속에 엄청난 씨앗이 들어있던 겁니다.

 

3. 생산이 아니라 분배.

예수님께서 사신 삶과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 정확하게 똑같은 성격의 삶입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생산하신 분이고요, 우리는 그것을 분배하는 분입니다.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중에서 더 쉬트 목사님이 과테말라로 단기선교 갔을때의 일입니다.

단기 선교 가기전에 갑자기 하나님이 이런 감동을 주셨답니다. “이번 여행에서 그 사람들에게 예수를 대표하라예수님이 주신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하고 사단이 준것이라고 생각해서 사단을 꾸짖었답니다. 이어서 마음속에 그분의 음성, 그분의 손, 그분의 발이 되라그러면서 그분이 육체로 거기에 계신다면 행하실 것이라 생각되는 그일을 행하라 그분을 대표하라그런 감동이 있어서 내 생각대로 말고, 주님의 도구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라는 말이구나! 이렇게 이해를 했답니다.

1976년에 과테말라에 참혹한 지진이 있어서 오지의 마을로 가서 집을 지어줄 일을 하려고 선교를 간겁니다. 낮에는 단칸방짜리 집을 지어주고 저녁에는 마을 공터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집회를 한겁니다. 이렇게 섬겼는데 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께 돌아왔을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더래요. 마지막날 저녁에 그 목사님이 설교하게 되어있는데, 자기팀중에 말하길 마을 저편에 7,8살 된 어린 아이가 나무에 묶여 있는데 짐승처럼, 개처럼 지저분하게 묶여 있다고 말한겁니다.

부모에게 물었는데 그애는 미쳤어요. 우리는 그애를 자재시킬수 없어요 만약에 풀어놓으면 자기몸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망쳐 버린답니다. 그애를 위해서 우리가 할수 있는 다른일은 없어요. 그래서 묶어두고 있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에 이 목사님이 그렇게 마음이 아프더랍니다. 설교하려고 섰는데 마음에 감동이 주어졌답니다. “내가 마을 건너편에 있는 나무에 묶여있는 여자 어린아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이들에게 말해라, 지금까지 네가 설교한 그 예수의 이름으로 그 일을 행하겠다고 그들에게 말해라. 그 이름을 통해서 여자아이를 잡고있는 악령을 깨트리겠다고 그들에게 말해라. 그리고 그 여자 아이가 자유함을 얻고 정상으로 돌아오면 네가 설교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임을 알게될것라고 그들에게 말해라. 그러면 그들은 네가 설교하는 예수가 바로 네가 말하는 그분임을 믿을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감동이 있더랍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않으면 어떻게 돼죠? 그랬더니 거역은 실패를 가져온다 전에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느냐 예수를 대표하라고!. 그러면서 믿음이 주어지기 시작하더랍니다. 자신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이 모든 일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 아이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여자 아이가 치유받았고요. 그것을 본 모든 청중들이 그날밤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사람은 본인이었습니다. 전도여행을 가기전부터 감동을 주셨다는 것은 이 여자아이를 구원하기 위한게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겁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 아이에게 하나님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 이시니까요. 그 아이를 자유케 하실뿐만 아니라 그걸통해 그 마을의 잃은 영혼은 구원하셨습니다. 그 일은 아버지의 행하심을 통해 동참하는 사람들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이 모든 일을 생산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치유, 우리의 자유케됨, 우리의 회복, 화목, 모든 것들을 위한 생산을 이루셨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놀라운 승리가 2000년후에 과테말라에 오지 지역에 있는 귀신들린 여자 아이에게 나눠질려면 이것이 분배되어져야 되는 겁니다. 이 일로 하나님이 부르신 겁니다.

 

4. 여기에 고난이 있습니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게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여기서의 고난은 가장 먼저 이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땅에 살려고 하면 많은 불이익과 많은 고난을 경험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떠한 고난도 없다면 분명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있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여기의 고난은 아버지일에 동참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건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의 온 삶으로 거기에 동참하려면 우리는 반듯이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의 고난은 생산을 위한 고난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이 하실수 있었습니다. 우릴 구원하고 마귀의 세력을 파하고, 죄의 세력을 멸하고, 죽음을 멸하는 그 모든 일을 위한 고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완성이 되었고, 히브리서에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이미 드렸다고 말함으로써 이 고난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고난을 사람들에게 나누는데 있어서 전달하는데 있어서 동참하는데 치러야할 고난을 말합니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치러야할 고난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여기의 사망은 구원을 이루기 위한 사망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훌륭한 사도라도 절대로 주님의 고난에 손톱만큼도 동참할수 없습니다. 그는 타락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의 말하는 사망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승리가 사람들에게 나눠지는데 참여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저는 설교자입니다. 제가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쉽습니다. 다 준비된 집회에 가서 하나님이 주신대로 기도하면서 말씀만 전하면 됩니다.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그런데도요 많은 경우에 예배를 드릴때라던가 설교전이라던가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할만큼 힘들때가 많습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영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럴때일수록 하나님이 설교에 함께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만 하더라도 죽음이 우리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이 듣는자 가운데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세요.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셔요. 그런데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면은 고난이 따라요 댓가지불이 요구됩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죽음은 우리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과테말라의 예를 든다면 온 가족, 온 마을에서 버림받은 소망이 없는 그 어린아이가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승리로 인하여 온전히 자유케되고 그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은 전혀 계산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일을 위해 그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할 고난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비하면 너무너무 작은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을 자기들의 특권으로 여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것을 의의행실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4가지가 나옵니다. 기도, 금식, 헌금, 구제.

그리고 순종과 봉사를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우리가 주님앞에 세마포를 입고 설텐데 이것을 성도들의 의의행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기꺼이 댓가를 지불하고, 그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삶이 없으면 그날에 우리는 벌거벗은 채로 발견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5.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생명이 있습니다.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주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일에 동참 할 때 그것을 고난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인해서 받을 영광과 이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난은 잠시받는 것이고,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으로 인해서 얻어질 영광은 영원한 것이고, 이것에 비하면 지극히 크고 중한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고난은 우리안에 생명이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삶에 생명이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주위에서 오늘날도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가족들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관계동심원안에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주시해서 보고,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할 때, 어떤때는 조롱을 당하기도 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하고, 댓가를 지불하기도 하고, 많은 애를 끓기도 하고, 때로는 그로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씨름하기도 하고, 성경의 표현대로 내 안에서는 죽음이 너희안에는 생명이 역사한다고 말한것처럼. 그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으로, 그들안에 생명이 넘치게 될 뿐만아니라 그게 여러분의 영광이 넘치는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시리즈설교 > 하나님의유업과본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의 유업(6)  (0) 2017.08.12
아들의 유업(5)  (0) 2017.08.12
아들의 유업(3)  (0) 2017.08.12
아들의 유업(2)  (0) 2017.08.12
아들의 유업(1)  (0) 2017.08.1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