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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적인 삶 자기 중심적인 삶

시리즈설교/하나님중심적삶

by 발의무리 2006. 10. 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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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적인 삶 자기 중심적인 삶

2006.6.25(주낮)



성경은 창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피조물된 우리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공급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반은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중심적인 삶을 살 때 그곳에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보호, 인도, 평강과 안식, 물질의 풍요등 하나님의 모든 생명과 복이 넘치게 됩니다.


1.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중심적인 삶과 자기중심적인 삶


창1: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 밖에서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곳에는 먹을 것 입을 것, 자는 문제 모든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거기에는 창조주가 공급하는 모든 풍요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습니다.(창1:29-30)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곳에는 하나님과 친밀함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보호, 인도, 평강과 안식, 물질의 풍요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갈 때에는 그곳엔 하나님의 공급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언제 철저한 결핍이 찾아오게 되었나요? 그들이 죄를 범한 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풍요를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조주의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기의 내재적인 자원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자원이 끝나면 죽게 됩니다. 점점 모든 삶의 영역에서 결핍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고갈이 즉각적으로 찾아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중심적 삶을 살게 될 때

창3장

그들은 가장 먼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창3:8-9)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타락하기전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과 간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타락 이전에 그들은 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 말은 그들 사이에 온전한 화합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로 그들은 부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대하여 불신과 간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병들게 되었습니다.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들의 삶 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 마음의 상처와 병 모두는 자지 중심적인 삶의 결과들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내적 상처나 병이 치유되는 진정한 길은 하나님 중심적은 삶으로 서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몇 가지 치유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이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병들었습니다.

창3:12-13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정직하게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둘러대고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환경이 그들로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창3:16-19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환경적인 고갈이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육신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창3:19, 22-23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그들에게서 평안과 안식이 거두어졌습니다.

렘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진정한 평안과 안식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 속에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타락할 때, 거기에는 진정한 평안이나 안식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 중심이될 때 그곳에는 생명의 결핍인 죽음이, 풍요의 결핍인 빈곤이, 건강의 결핍인 질병이 왔습니다. 사랑의 결핍인 미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두려움, 수치심, 시기, 질투, 변명, 부부사이 당신 탓...이 모든 것이 언제 찾아왔느냐. 범죄한 이후, 인간이 타락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2.이스라엘 백성들을의 하나님중심적인 삶과 자기중심적인 삶

신30:15-20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생명을 택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택한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때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흐르게 됩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이 말씀은 이랗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했다.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렸다.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며 무한한 공급원이시며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팠다는 겁니다.


3.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중심적인 삶과 자기 중심적인 삶

이것은 눅15장 탕자의 비유에서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언제 결핍이 찾아왔느냐? 바로 아버지 품을 떠나는 순간부터 결핍은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한 거예요. 즉 아버지 중심적인 삶에서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살기 시작할 그때부터 결핍은 시작된 겁니다.


나중엔 그 결핍이 얼마나 심한지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돼지 치는 자들과 함께 살지도 않는데 그 결핍이 얼마나 심한지 돼지 치는 직업에 돼지가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지만 채우지 못한 너무나 극심한 결핍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언제? 아버지 품을 떠날 때,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자기중심의 삶을 살 때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회복되어졌습니다.

예복을 입히고

가락지를 (유업)

신발(아들로, 당시 종은 신발을 신지 않음)

잔치(하나님의 풍요로 채우심)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함을 아담과 아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아버지 품을 떠난 둘째 아들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 때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보호, 인도, 평강과 안식, 물질의 풍요등 하나님의 모든 생명과 복이 넘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날 때 즉,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될 때 그기에는 하나님의 공급이 중단됨으로 철저한 결핍이 시작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 중심적 삶에서 떠나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30장에 너희 앞에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를 두고 너희는 생명과 복을 택하라고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앞에 생명과 사망이 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당연히 생명과 복을 택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사망과 화를 택하지 말고 생명과 복을 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왜? 사람의 타락한 본성은 사망과 화를 택한다는 거예요. 아담이 그랬어요.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예들이잖아요. 이처럼 타락한 본질은 자기중심적입니다. 우리 신앙이 탁하면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자기 중심적인 삶은 천사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사14장에 나오는 계명성에 관한 내용을 사탄의 타락에 대한 내용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사14:12-14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구나


사탄은 원래 천사장 중 하나로서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피조물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경험했음이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건적인 통치 아래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스스로 다짐합니다.


“내가 나를 높이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그는 스스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다짐하며 반역을 합니다. 그 결과 그는 쫓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쫓겨난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뱀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걸작품,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되 동일한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하나님 대적 실패하니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것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라”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인 삶으로의 유혹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된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단순히 불순종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서 자기중심적인 삶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엡2:1-3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인류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인 삶, 즉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에베소서1장에서는 세상 풍속을 좇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노릇하려는 자리,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타락한 본성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으로 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 사탄은 아담이후 계속해서 인간들에게 속삭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라! 네 마음대로 살라라! 하나님 없는 삶, 스스로 하나님 노릇 하려는 삶(건강, 시간, 물질..) 즉 자기 중심적 삶을 부채질 합니다.


4.자기중심성에 나타난 특징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특징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이 자기 중심성에는 4가지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1)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입니다.

2)자기를 변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3)자기과신 입니다.

4)자부심입니다.


1)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입니다.

창4:3-7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 없는 삶을 꿈꾸고 반역한 아담이후에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에서 시작됩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각기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만 합당한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분하게 여긴 가인은 죄를 지으려는 미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그에게는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밀려난 것에 대해 매우 분해합니다.


우리 가운데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경향이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언제나 자기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경쟁심, 시기, 질투가 나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진정한 연합도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중심에 서지 못하면 못 견뎌 합니다.


이것이 연합을 방해하는 무서운 요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말하면서도 자기가 중심에 서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중심에 서지 못하면 함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쟁심이 우리로 죄로 인도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다툼은 여기서 나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형제 사이에, 이웃 사이에, 지역 사이에, 나라 사이에, 민족들 사이에,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마음을 갖기에 전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롬1:28-32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러분 보세요. 자기가 중심에 있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최고의 가치에 두길 싫어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꿈꿉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저희를 그대로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온갖 죄악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이난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 나타난 죄 된 모습들입니다.


2)자기를 변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의 대답을 보십시오.


창3:12-13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하신 저 여가 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타락은 사람과 그 이웃사이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내 탓으로 돌려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 합니다. 아마도 그날 하와는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가까운 사람 사이에 상처를 주고받는 문제와 너무나 동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와에게 묻습니다. 그녀도 역시 “뱀이 나를 뀌어서..”라고 변명합니다. 자기 탓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심지어 하나님에게 까지 그 이유를 둘러 댑니다. 이때 이후로 인류는 자기를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고 모세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회중들 때문이라고 둘러대려합니다.

출32:22-24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같은 방식으로 불순종한 사울왕은 자기의 잘못을 백성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삼상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변호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해댑니다. 아담의 범죄 후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지만 그는 모른 체 하며 거짓말합니다.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여러분 우리 안에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우리 본성은 끊임없이 자기를 변호하며 또 거짓말을 해댑니다. 자기가 상처 받지 않으려고 변호합니다. 손해보지 않으려고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변호할까요? 죄를 핑계됨으로 ‘자기를 정당화시키려는 태도’때문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떠넘김으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로 심각한 이유는 말씀 앞에 정직하게 대면해야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변호해 버립니다. 타협해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옛 본성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삶이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대면할 때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애통함으로 주님을 찾게 됩니다.


3)자기과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를 신뢰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눅22:33-34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는 죽는 자리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의 예언하신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해 버리고 맙니다. 그는 자신을 과신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자기를 과신합니다. 그래서 자기자원으로 살려 고합니다. 자기 열심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고 도전합니다. 그러나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과 사역과 신앙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15:19, 30, 8:26, 28, 14:10)


그에 반해 베드로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이 있다고 상상하는 한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옛 본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자기과신’이 주님께 주도권을 드리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살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있어야합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4)자부심입니다.

자기 과신의 결과는 자부심으로 남게 됩니다. 자기가 한 행위를 보면서 자부심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가 이루어 놓은 일을 봅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을 보면서 상대적인 우월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것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부심의 출처는 자기입니다.  그리고 자부심은 자기를 놓지 않습니다. 자기를 강하게 붙잡게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서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관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으며 영적 분별력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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